인쇄 기사스크랩 [제819호]2013-10-18 11:09

[르포] 서울 4대 궁 둘러보기

1천만 외래관광객 시대 궁궐은 4개국만?

독일에서 공부를 했던 H군. 독일인 친구에게 한국여행을 추천했다. H군은 독일인 친구를 위해 일일가이드로 나서기로 했다.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여행코스는 서울 4대 궁 관광.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첫 여행코스인 덕수궁부터 H군은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궁 통역 안내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만 가능했던 것. 게다가 안내 팸플릿 역시 4개국의 언어로만 제작됐다. 한국어 팸플릿을 손에 들고 독일인 친구와 여행을 하는데 가는 곳곳마다 문제가 발생한 H군은 속상한 마음만 가득하다.

글·사진=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4개국 외 타국어 사용자, 소외감 느낀다

무료 안내서비스, 메리트 적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외래객 입국자 수는 한국관광공사 통계 기준 5,940,93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성장했다. 이들 중 중국이 2,117,533명으로 1위, 일본이 1,739,822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방한 미국관광객은 348,573명으로 3위, 타이완(345,546명), 홍콩(246,721명), 태국(187,291명)이 뒤를 이었다. 방한 외래 관광객들 중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미국과 타이완은 수치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지역 국가들의 한국 관광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5일 취재차 방문한 덕수궁에는 ‘수문장 교대의식’을 감상하는 외래객들이 눈에 띄었다. 외래객들은 덕수궁 입구 앞에서 펼쳐지는 동 행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출연진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알고 싶어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사이사이 수문장 교대의식의 의미와 절차에 대한 설명을 덕수궁 내 통역사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순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진행되는 행사 시간에 맞춰 4개국 언어로 통역을 하기 때문에 이해할 시간도 없이 통역이 빠르게 끝나 아쉬웠다. 또한 4개국 언어 외 타국어 사용 외래객들은 답답한 마음에 길가에 설치된 수문장 교대의식에 대한 팸플릿을 가져갔지만 그 역시 다른 언어로는 돼 있지 않아 아쉬움이 배가 됐다.

사실 이 같은 문제는 경복궁에서 이달 27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진행하는 궁궐 호위군 사열의식인 ‘첩종’ 행사에서도 나타났다. 팸플릿부터 안내 통역서비스까지 4개국 언어만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첩종 행사는 출연진들의 대사도 있어 행사가 연극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사에 대한 통역은 제공되지 않는다.

덕수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모두 궁 안내 팸플릿 역시 4개국 언어로만 제작됐다. 더불어 각각의 궁마다 무료 안내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 역시 4개국 언어에만 국한됐고 한국어 무료 안내가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다.

덕수궁의 경우 공휴일은 한국어 무료 안내만 가능하고 토/일요일은 9시30분, 1회 일어 서비스와 짝수 달(月)과 홀수 달(月)에 따라 13시40분 각각 중국어, 영어 1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창덕궁의 경우 중국어는 10시, 일본어는 12시30분으로 각각 단 1회 무료 안내를 진행하고 있다. 입장시간이 9시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10시 안내 진행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또한 일본어 서비스는 점심시간과 겹쳐 애매한 시간대에 자리했다. 단 1회 서비스이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면 하루 일정을 바꿔야 하는 불상사도 발생할 수 있다.

무료 안내서비스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4개국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외래 관광객이라면 보다 자세하게 궁 내 건물 및 시설, 역사 등을 알 수 있어 관광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개별여행객(FIT)이 늘어나는 현 상황과 맞물려 가이드 없이도 서울 4대 궁을 관광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은 관광 인프라로 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료 안내서비스 자체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이를 잘 알지 못하는 내외국인도 많으며 4개국 언어에 국한된 점, 안내 시간대가 실질적인 서비스를 받기에 모호한 점 등 지적이 일고 있다.

가족과 함께 경복궁을 찾았다는 한 태국 여행객은 “자연과 건축물이 어우러져 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번화한 도시로만 생각했는데 도심에서 이런 자연경관을 볼 수 있어 너무 기분 좋다. 그러나 이곳에 대한 소개나 안내를 받지 못해 아쉽다”며 “팸플릿을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만 제작했으면 무료 안내 서비스는 다른 언어 사용자들을 위해 제공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방문했지만 소외감만 느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동선 표시 있으나 없으나 무용지물은 마찬가지

출입구부터 혼란, 궁 관광 곳곳 이리저리 치여

 

두 번째 큰 문제는 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10월, 선선한 바람과 색이 바라지는 나뭇잎들을 보며 궁을 찾은 내외국인은 평일이든 공휴일이든 인산인해였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한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궁궐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입장권을 내민 이후부터 한걸음 떼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궁 입구에 서서 넓은 궁 한복판을 보고 있자니 어디부터 둘러보아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손에 쥔 팸플릿을 한 번 봤다가 궁을 한번 봤다가 한숨을 쉬는 외국인 관광객을 보고 있자니 동병상련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국인인 기자조차 발걸음 하나 떼기가 쉽지 않은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독일이 고향이라는 그는 영어로 제작된 팸플릿을 들고 있었다. 영어도 어렵지만 어쩔 수 없다는 그와 씁쓸한 인사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4대 궁 취재를 다니면서 위의 사례와 같은 외국 관광객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차도르를 착용한 한 외래 여성관광객은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혼자 궁궐 관광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보다시피 나는 길을 잃었다. 출구를 찾을 수 없다”며 황망한 모습을 보였다.

창덕궁의 경우 동선이라는 석패가 건물 중간 중간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방향 표시를 해 놨지만 어떤 동선인지에 대한 내용도 알 수 없었다. 팸플릿과 궁궐 입구 앞에 크게 표시된 각각 궁의 전면도를 제외하면 궁 관광 시 필요한 동선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것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궁을 관광하는 이들끼리 부딪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좁은 문 앞에서 나오는 사람과 들어가려는 사람이 마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궁 관광과 더불어 생리현상으로 궁 내 화장실을 찾다가 울상을 짓는 이들도 많았다. 화장실이 어디에 위치하는 지, 현재 위치에서 몇 m 내 자리하고 있는 지 등 실질적인 정보가 아니라 화살표 방향으로만 알려주고 있고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묻더라도 대강 위치 설명으로만 끝이나 아쉬움이 컸다.

서울의 4대 궁을 취재하면서 도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훼손되지 않은 건축물을 볼 수 있다니 감격스러움과 뿌듯함이 공존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관광명소를 실질적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활용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각각의 궁에 대한 정보제공과 동선 안내, 4개국 이외의 타 언어 사용자들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4대궁 여행정보]

▲경복궁

·입장시간 : 09:00-18:00, 17:00(11월~2월) / 18:30(6월~8월),

·입장요금 : 어른(만25~64세 이하) 3,000원 이외 무료

·무료안내시간 : 국어 - 11:00, 13:00, 14:00, 15:00, 16:00(동절기 15:30)

영어 - 11:00, 13:30, 15:30 / 일어 - 10:00, 12:30, 14:30

중국어 - 10:30, 13:00, 15:00

·주요행사 : 첩종 - 10월27일까지 매주 토(14:00)/일요일(10:30, 14:00)

 

▲덕수궁

·입장시간 : 09:00-20:00

·입장요금 : 어른(만 25~64세) 1,000원 이외 무료

·무료안내시간 : 국어 - 11:00. 14:00, 15:00, 16:30

영어 - 10:30 / 일어 - 09:30, 16:00 / 중국어 - 13:40

·주요행사 : 수문장 교대의식 - 11:00, 14:00, 15:30

 

▲창경궁

·입장시간 : 09:00-18:00, 17:30(11월~1월) / 18:30(6월~8월)

·입장요금 : 어른(25~64세) 1,000원 이외 무료

·무료안내시간 : 국어 - 10:30, 11:30, 13:30, 14:30, 15:30, 16:30(11월~3월 16:00)

영어 - 11:00, 16:00 / 일어 - 10:00, 14:00 / 중국어 - 13:00, 15:00

 

▲창덕궁

·입장시간 : 전각 - 09:00-17:00, 16:30(11월~1월) / 17:30(6월~8월)

후원 - 09:00-16:00, 15:30(11월~1월) / 16:30(6월~8월)

·입장요금 : 전각 - 어른(25~64세) 3,000원 이외 무료

후원 - 어른 5,000원, 소인 2,500원

·무료안내시간 : 국어 - 09:30, 11:30, 13:30, 15:30, 16:30

영어 - 10:30. 14:30 / 일어 - 12:30 / 중국어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