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43호]2014-04-25 14:33

[창간기획] 여행업계 성지 ‘무교동’ 안녕하십니까

지키는 자 vs 떠나는 자 vs 돌아온 자

 무교동을 걷다보면 한 집 건너 여행사, 한 집 건너 관광청이다. 무교동이 언제부터 여행업계의 성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수많은 대사관들이 광화문과 무교동 일대에 자리하면서 그와 관련된 비자, 관광 등 관련 업종들이 순식간에 생겨났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90년대 초반 ‘여행’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안고 무교동으로 터를 잡았던 여행사, 관광청, 항공사, 그들의 홍보를 담당하는 마케팅 회사 등등 관련 업종들이 하나의 벽돌이 돼 여행업계 성을 쌓았더랬다. 그러나 2000년대가 지나면서 여행업계 선배와 선배의 선배, 선배의 선배의 선배가 쌓아올렸던 성지 무교동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성벽 사이사이 하나 둘 빠져나간 자리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본지를 통해 무교동의 아성을 이어가며 지키고 있는 자와 떠나는 자, 친정으로 다시 돌아온 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사진=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Round 1 지키는 자 VS 떠나는 자


지키는 자 “그대가 성지의 전부일 거란 생각은 마”

1989년 해외여행 완전자유화가 실시되면서 여행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후 IMF 경제위기를 맞으며 한 차례 휘청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나름 건재하다. 무교동 역시 국내 여행시장이 성장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이다.

각국의 대사관들이 광화문, 시청, 서소문동 일대에 자리했고 그들의 비자업무를 대행해 주는 기관부터 여행사, 랜드사, 관광청까지 관련 업종들의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무교동에 여행업계의 성벽을 쌓아올린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비워야 하는 자들은 그 오랜 시간 무수히 많았고 그럼에도 여행업계의 성벽은 단단했다.

여행사가 비자업무를 대행할 수 있게 되면서 비자 관련 기관들은 꼬리를 감추게 됐다. 그들의 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했던 업종이 여행사다. 그만큼 여행사는 많다. 최근 전문여행사들이 강남과 마포 일대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빠져나갔다고 성벽이 무너질 일은 없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반복됐듯 자연의 순리처럼 빠져 나간 그곳은 또 다른 여행사나 항공사, 관광청과 홍보 업체가 메울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길. 그대들은 성벽을 쌓아준 하나의 벽돌이었지만 또 다른 벽돌들이 무궁무진하니까.
 

 

강남일대

떠나는 자 “도전장 내민 것 아냐, 현실 직시했을 뿐”

한때 여행시장은 블루오션이었다. 돈이 없어 못 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가야할 지 몰라 못 가는 이들이 많았었다. 때문에 여행사가 호객하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넘쳐났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한국인이 1,5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해외여행을 어떻게 가야할 지 모르는 이들은 없다. 돈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국적사든 외항사든 한국과 각 나라를 연결하는 항공편은 넘쳐나고 다녀온 이들의 정보는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해외여행’만 쳐도 여행사부터 여행상품, 여행후기 등 지나칠 만큼 많은 정보들이 예비 여행객들에 무용담을 들려주고 싶어 입을 오물거리고 있다. 때문에 블루오션이었던 여행사는 레드오션을 넘어 블러드오션을 겪고 있다.

출혈경쟁에 뛰어든 건 예사고 깎아내리기 까지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형사나 중견사가 아닌 이상 콧대 높은 무교동에 자리하는 건 쉽지 않다. 단지 우리는 우리의 주 고객층이 즐비한 지역으로 옮긴 것뿐이다. 거창한 포부보단 현실을 직시한 것일 뿐.

마포 일대에 자리한 여행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맞춤여행과 자유여행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전문여행사다. 자유여행에 호의적인 고객층은 젊은 20~30대. 홍대, 이대, 신촌, 충정로 등 부도심 일대에 자리한 여행사들의 주된 이유는 저렴한 임대료도 있지만 젊은 대학생들의 유입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고객들과 가깝게 마주함으로써 어필하겠다는 것, 그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겠다는 것, 이뿐이다.

 


여행사들이 몰려 있는 무교동 일대
 

Round 2 돌아온 자 VS 떠나는 자

 돌아온 자 “소통 어려워 불통되고”

최근 무교동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틀었던 일부 여행업계가 친정 무교동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강남에 터를 잡았던 웹투어는 모회사인 하나투어 본사 옆으로 자리했고 캐나다 알버타주관광청 역시 무교동 일대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주 타깃이 밀집된 지역으로 옮겼던 이들이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공통된 의견은 파트너사와의 정보 교류, 회의 등 커뮤니케이션의 불편함이 지대했기 때문. 여행업은 단순 한 사업체만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항공 발권부터 협력업체가 필요하다. 다수의 협력업체가 무교동 일대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10~20분이면 끝나는 미팅도 한 시간을 달려 무교동으로(혹은 강남으로) 한 업체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돌아가는데도 또 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시간 소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면대면 미팅보다는 통화나 메일 등 간접적인 미팅들이 주를 이루게 되고 의사소통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다보니 실수가 잦게 되고 협력사가 멀어지는 경우도 더러 발생했다.

수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주 타깃이 밀집된 지역으로 옮겼다 할 지 언정 그들에 제공해야 할 여행상품의 판매과정에서 또는 상품기획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거나 차질이 빚어지다 보면 고객을 잃게 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협력업체들도 무교동에 자리한 많은 업체들을 두고 강남이나 마포까지 왔다 갔다 하며 더 많은 수고를 들일 이유가 있을까. 불편이 계속 되다보면 멀어지게 된다. 특히 여행사의 경우 고객과의 상담시간이 실질적인 수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힘을 쏟아야 하는데 이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면 말하지 않아도 불편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여행업 관련 트래블 마트, 지역 세미나 등 대규모 행사나 관광청들이 지원하는 스페셜 교육과정 등 일련의 행사들 또한 무교동 주변에 자리한 호텔, 대사관 등에서 진행된다. 11시나 2~3시부터 행사가 개최되면 하루 업무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행사의 경우 참석하지만 스페셜 교육과정의 경우 참가자도 힘들고 회사도 힘들다. 횟수가 더해질수록 부담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떠나는 자 “행사나 시간이나 도긴개긴”

여행업은 유관기관과의 관계가 중요한 업무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마포와 무교동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때문에 파트너사와의 업무적 불편함이나 시간적 소모는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다만 강남의 경우는 특수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여의도에 증권가가 즐비한 것처럼 무교동이 여행업계 성지이듯 강남일대는 웨딩산업이 활발한 지역이다. 요즘 결혼식 예약도 원스톱이다. ‘스드메’라고 들어는 봤는지. 결혼식에 필요한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의 줄임말이다. 원스톱으로 계약하는 신혼부부들은 허니문 역시 강남에서 결정짓고 싶어 한다. 실수요로 이뤄질 황금 고객이 있는데 무교동에 굳이 자리할 필요는 없지 않나. 허니문 여행사들의 경우 지역 전문여행사나 테마 전문여행사, 패키지여행사 등과는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 어떤 여행사든 항공사, 호텔업, 관광청과의 유기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앞서 말한 ‘스드메’ 관련 업체들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과의 관계를 통한 수요 창출이 쏠쏠하다.

강남 8학군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부모처럼 웨딩산업의 메카에 소규모 허니문 여행사가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고객들을 새롭게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놓칠 수 없는 존재다. 지난해 주한FIJI관광청이 강남으로 터를 옮겼다. 피지 또한 여행목적지로서 허니문에 특화돼 있다 보니 관련 업종이 즐비하고 주 타깃이 밀집된 지역으로 사무실을 이전함으로써 보다 가깝게 잠재수요를 이끌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피지관광청과 세이셸관광청은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강북과 강남 두 곳에서 같은 행사를 2번씩 개최한다. 이유는 앞서 언급됐듯 타 지역에 위치한 업체들의 시간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행사를 주최하는 쪽에서 많은 편의를 봐 주고 있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여행박람회나 전시회 등의 경우 강남에 위치한 코엑스나 SETEC에서 많이 개최하지 않나. 그렇게 보면 비등비등한 것 아닌가 싶다.

 

FINAL Round 3 지키는 자 VS 떠나는 자

 지키는 자 “성지 무교동이여 영원하라”

뿌리 깊은 나무는 모진 비바람이 몰아치면 그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째 뽑히진 않는다. 여행업계의 성지 무교동도 마찬가지다. 탄탄하게 틀을 다지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올린 벽돌들로 여전히 건재하다. 무엇보다 무교동은 한국 여행시장의 역사다. 여행을 떠나기 전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찾아왔던 이들과 여행객들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발이 땀나게 뛰어다녔던 여행업계 종사자들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긴 장소 아니겠는가. 많은 이들의 격려와 화합과 도움 속에서 앞으로도 성지 무교동은 터를 다지고 재정비하면서도 그 세월을 잊지 않고 더욱 성장하고 번성하리라 본다.

 

떠나는 자 “제2의 무교동을 위하여”

무교동을 떠났다고 무교동을 등진 것이 아니다. 무교동은 여행업계 종사자들의 고향이고 친정이고 텃밭이다. 예컨대 이런 셈이다. 장성한 아들이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고 겪어보고 도전도 해보고 경험도 쌓기 위해 익숙한 곳을 떠난 것이다. 새롭게 자리한 곳에서 성공한다면 제2의 고향이 될 것이고 뿌리가 될 것이다. 무교동을 떠나온 이들은 제2의, 제3의 무교동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움직일 것이다. 무교동에 있든 강남에 있든 마포에 있든 여행이라는 공통 틀 안에 우리는 하나이지 않겠는가. 서로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그야말로 여행업계가 번창하는 것이다.

 

돌아온 자 “성지 무교동 대문은 열려있다”

떠나는 자 잡지 않고 돌아온 자 가로막지 않는 무교동의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 결국 길은 하나이듯 여행업계 또한 친정은 무교동이지 않을까. 무교동에 터를 잡은 업체나 강남이나 마포에 터를 잡은 업체나 다시 무교동으로 돌아온 업체나 모두가 빠르게 변하는 여행시장에 대응하는 것일 터. 무교동을 떠나는 이들도 있지만 그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의 섭리이지 않을까. 누군가는 떠나고 그 남은 자리는 또 누군가가 차지하게 돼 있다. 무교동의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한 성지 무교동의 성벽이 허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