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57호]2016-10-17 09:19

현지취재-태국 아유타야(Ayutthaya)
영원 그리고 불멸의 도시 아유타야 
독특한 문화유산과 볼거리 갖춰, 도시 전체가 유적지
태국 고대 왕조 및 불교 역사 한 눈에 파악 가능
 
 
‘사진 찍을 공간이 부족합니다. 설정에서 관리 가능합니다.’
쉽지 않은 여행의 시작을 미리 예고하듯 출발 전 휴대폰에서 반갑지 않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혹시 몰라 전원을 껐다 키는 무식한 행동을 몇 차례 반복했지만 여전히 휴대폰은 단 한 장의 사진도 허락하지 않았다. 장기 여행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도 생명인 냥 마구 사진을 찍어댄 결과였다.

어떻게든 사진을 남겨보려고 열심히 PC와 E메일 사이를 오고 갔지만 아쉽게도 상태가 좋지 못한 휴대폰은 계속 오류를 일으키며 세상과의 연결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이미 지나간 쓸모없는 사진들을 싹 지우고 휴대폰 용량을 확보하면 된다.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챙기는 것이 여행자의 첫 번째 원칙이자 미덕임을 그 멀리 방콕에서야 다시 깨닫고 만다.

한 시간 여의 사투 끝, 홀가분한 휴대폰과 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호텔 방 문을 열었다. 방콕을 잠시 떠나 홀로 ‘아유타야(Ayutthaya)’를 찾아가는 길. 불멸, 그리고 영원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몸도 마음도 가벼운 여행자를 알아서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사진제공=태국관광청(www.visitthailand.or.kr)
 


아유타야 여행의 핵심은 무소유와 여유에 있다. 가장 화려했던 도시는 400년 만에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됐다.
 

“시골기차 타고 두 시간,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가이드북은커녕 브로슈어나 지도 한 장 필요 없을 정도로 익숙한 방콕 여행에서 뭔가 새로운 경험을 위해 다른 도시를 찾기로 했다. 애당초 계획했던 치앙마이는 그 즈음 유행했던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포기하고 휴양지로 이동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여행사들이 왜 아유타야 데이투어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지 궁금해졌다. 여행업계지 기자로 오랜 기간 몸담았지만 아유타야에 대한 정보나 사전 지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배들의 출장에서도 아유타야는 자주 등장하는 목적지가 아니었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70km 지점에 떨어져 있는 도시. 기차나 차량을 통해 이동할 수 있어 접근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현지 여행사나 국내 대형여행사들이 다양한 데이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탓이다. 차량과 가이드 동행이 포함된 전일 데이투어 상품은 5~6만 원 후반, 반나절 상품은 4만 원 수준이다. 뜨거운 낮을 피해 조금은 선선한 밤에 도시를 관광하는 상품도 인기.

현지 기사들이 미니버스를 이용해(BTS Victory Monument 역에 내리면 근처에 주차된 버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정한 수의 관광객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다 한 번에 출발하는 상품도 있다. 당연히 왕복 운송 서비스가 제공된다.

기차를 통해 떠난다면 우선 방콕 후알룸퐁(MRT 노선)역으로 이동 한 뒤 중앙 대합실에서 티켓을 끊어야 한다. 아유타야까지 편도 행 요금은 고작 15바트(우리 돈 약 450원)로 저렴하다. 처음 경험한 후알룸퐁 역은 그 자체로 신비한 풍경이다. 방콕보다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있는 것처럼 높은 천장과 아치형의 플랫폼이 눈길을 끈다.
 

아유타야 외 태국 주요 도시와 돈무앙공항 그리고 라오스 등 동남아 다른 지역까지 기차로 이동이 가능한 탓에 백팩을 멘 전 세계 배낭여행자와 양 손 가득 보따리를 거머쥔 장사꾼들이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역 곳곳에서 바쁘게 발을 움직인다. 역사 내부에는 작은 푸드 코너와 발 마사지 숍, ATM 기계들이 촘촘히 자리해 있다. 남녀 화장실도 여러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용료 3바트를 내야한다. 청결 상태는 슬프게도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기차를 통한 아유타야 방문은 차량에 비해서는 불편하다.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기차가 우리나라처럼 정확한 출-도착 시간을 지키는 시스템이 아닌 탓에 중간에 멈춰 서는 것이 일상이다. 아무런 공지나 안내 방송 없이 차가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는데도 화를 내거나 답답해하는 사람조차 없다.

더욱이 전반적인 객차 시설이나 서비스가 상당히 낙후돼 있어 우리나라의 쾌적한 고속 기차 여행을 기대했다면 충격 아닌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에어컨이 부착돼 있는 기차는 요금이 조금 더 비싼 편이라고. 그러나 만약 더위가 절정인 6~8월 사이 아유타야를 방문하고 싶다면 에어컨 여부는 당연히 확인이 필요하다.

모든 과정이 별로인 것은 아니다. 열린 창문으로 두 시간 정도 우리나라의 논과 밭 같은 시골 풍경을 멍하니 쳐다보는 일은 신기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여행지로써 방콕의 화려함과 세련된 도시에서 벗어나 실생활에 가까운 태국을 만난다고 할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충분히 고독하고 싶다면 낡은 기차 안 딱딱한 의자가 최적의 장소다. 중간 중간 잡상인들이 기차에 올라타서 음료와 과일, 신문이나 잡지 등을 서슴없이 판매하는 모습 또한 과거 70년 대 드라마 속 한 장면을 연상시켜 흥미롭다.
 

대부분 유실되고 형태가 없는 아유타야는 현재 도시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화려한 불상
에서 과거의 모습이 보인다.

“화려했던 전성기 외롭지만 소박한 현재”
1350년 우통(U-Thong)왕에 의해 세워진 아유타야는 1767년까지 417년간 태국 싸얌(Siam)시대의 수도였다. 즉 방콕 이전의 수도로써 무려 4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화려하고 부유한 왕정 시대를 꽃피웠다. 이 기간 동안 총 33명의 왕이 아유타야에서 왕조를 이어갔으며 당시 아유타야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로 명성을 떨쳤다. 기록에 따르면 아유타야는 태국이 외세 국가와 첫 만남을 이룬 장소이기도 하다.

빠싹 강, 롭부리 강, 짜오프라야 강으로 둘러싸인 섬으로 흡사 요새와 같았던 위치 조건 탓에 전성기 시절인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중국, 일본,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상인과 귀족들이 무역을 위해 발이 닳도록 드나들기도 했다. 도시 곳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진귀한 보석으로 치장한 궁과 독특한 양식의 사원 및 별장 같은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또 불교를 숭배했던 초대 왕의 뜻에 따라 그 어느 곳보다 견고한 불교문화가 자리 잡아 오랜 기간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했다. 공식적인 건축물은 왕궁 3곳을 비롯해 375곳의 사원, 94개의 대형 문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도시에 자리한 궁과 유적지 들이 1,000여 개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영원할 것 같았던 왕조의 영광은 1767년 버마(미얀마)에 의한 침공으로 끝나게 된다. 몇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400곳이 넘는 유적지가 파괴됐고 수도는 방콕으로 이전됐으며 도시는 예정된 것처럼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후 200년 간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1970년 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91년 12월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세계 문화유적으로 지정되면서 그제야 조금씩 기능을 갖춰 복원 작업과 함께 관광지로써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기차역에서 내린 뒤 출구로 나가 건너편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아주 잠깐 강을 건너 이동하면 아유타야 관광의 출발점이 나온다. 기차만큼이나 낡아서 살짝 겁을 먹을 뻔 했던 보트는 출발 전 다시 보니 사람 외 자전거까지 함께 싣을 정도로 튼튼하다. 외국인 배낭 여행자, 롱드레스를 입은 젊은 중국 아가씨들, 일본인 노부부까지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지도를 펴놓고 아유타야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유타야를 관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택시/툭툭이/오토바이/자전거/미니 벤 등 개인 니즈에 따라 교통편을 선택하면 된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택시 관광. 2~3인 용으로 적합하고 최대 4인까지 가능하다. 가격은 800바트에서 1,000바트까지 대중이 없는 만큼 기사와의 협상 능력이 관건이다.

3~4시간 동안 아유타야의 인기 관광지 5~6곳을 빠르게 이동해 내려주고 20분에서 30분까지 관광할 시간을 주는 패턴이다. 역에 내리자마자 멀리서 여러 명의 택시기사들이 구김살 없이 다가오며 호객 행위를 하는 탓에 절묘한 찍기 능력이 요구된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한 여행은 동선이 꼬일 우려가 있다. 유적 및 사원들이 각각 멀리 떨어져 있어 길을 찾는 데에만 많은 체력과 시간을 요하기 때문. 한정된 시간 안에서 꼭 필요한 관광지 몇 개만 추려서 보고 싶다면 택시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참고로 유적지마다 20바트에서 50바트 수준의 입장료가 필요한데 6개 정도의 관광지와 유적 사원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입장권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대부분의 탑과 사원들이 정말 끝없이 하늘 위로 솟아 있다는 점. 외세의 침략으로 유실 된 아랫부분에 비해 탑 위쪽과 사원의 윗 부분은 그나마 형체가 유지돼 있는데 침략군들이 그곳까지 오르지 못해서라는 야사가 남아있다. 왕실의 고고했던 자신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유타야에 남아있는 관광지들은 온전한 것이 없었다.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과 덩그러니 빈터만 남아 있는 유적지. 대부분 손실된 탑과 사원들이 재밌다기 보다는 뭔지 모를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아주 작은 불상도 남겨두지 않은 외세의 잔인함은 화려했던 시대의 영광이 그리운 관광객에게 사실 흉물스럽게 다가온다. 트인 시야로 강을 마주하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탑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지만 마냥 신나고 들뜬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늘 날 아유타야는 태국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자부심과 독특한 역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오히려 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으로 인한 잔인한 상처는 결국 도시의 아름다움과 볼거리와는 별개로 몇 백년이 지나도 슬픔을 선물한다.
 
 
 

<추천 관광지>

▲왓 마하탓(Wat Mahathat) : 아유타야 시대 왕실 전용 사원이자 도시 중심지로 기능을 갖췄던 곳. 수코타이 왕조시대 건물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경내에는 200기에 달하는 탑과 18채의 예불당이 널리 퍼져 있고 중앙에 있는 높이 8m의 불상은 번성했던 과거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입구에 위치한 보리열매수 사이의 불상이 유명하다.
 
▲왓 프라 마하탓(Wat Phra Mahathat) : 라마 공원 동쪽에 위치한다. 1384년에 나레수엔 왕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아유타야에 있는 프랑(불탑·철탑)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가운데의 프랑은 높이가 50m에 달했다고 하나 지금은 심하게 파괴됐고 관목 숲 군데군데에 남아 있는 프랑과 불당의 흔적을 보고 당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불상의 표정이 풍부하며 1956년 복원 당시 탑이 있던 자리에서 많은 금불상과 보물 상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는 현재 방콕의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왓 프라시산펫(Wat Phra Si Sanphet) : 아유타야의 사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사원이다. 왕실 전용 사원이었는데 사원의 가운데에는 1448~1499년에 세워진 실론(스리랑카) 양식의 흰색 파고다 3개가 남아 있다. 파고다 안에는 역대 왕 가운데 3명의 유골, 의복, 불상을 넣은 상자가 중앙에 묻혀 있다. 경내에는 170kg의 금을 입힌 높이 16m의 불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18세기에 침입한 버마군이 약탈해 가고 절은 불태워 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방콕 왕조 초기에 재건됐으며 발굴된 유물 중 다수는 여러 박물관에 분산해 소장하고 있다. 사원 안쪽의 넓은 터는 원래 아유타야 왕조의 왕궁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미얀마의 침략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왓 차이왓타나람(Wat Chaiwatthanaram Ayutthaya) : 왕실 수도원 역할을 했으며 이 사원에서는 종교 의식과 함께 화장 의식이 거행됐다. 1767년에 버마가 침략한 이후에는 복원이 되지 않았으며 약탈 대상으로 전락했다. 높은 테라스 위에 35미터 높이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주 프랑(불탑, 첨탑 모양)과 테라스의 모서리에 서 있는 4개의 작은 프랑으로 구성돼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한 때 갤러리의 안쪽 벽에는 악마인 마라(Mara)를 제압하는 모습의 금칠된 불상들이 120개나 서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들이 대부분 손상된 상태로 금칠도 남아 있지 않다.
 
▲왓 야이차이몽콜(Wat Yai Chai Mongkhol) : 석고를 덧입힌 대형 와불상으로 유명한 곳. 왓 차오프라야타이 혹은 왓 야이라고도 부른다. 초대왕이 스리랑카(실론)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들의 명상수업을 돕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실론양식으로 설립됐으며 사원 내부에는 당시 미얀마와의 전쟁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방빠인(Bang Pain) : 아유타야에서 남쪽으로 약 3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화려한 여름 별장이다. 별궁이라고도 불리며 짜오프라야 강 중반, 길이 400m, 너비 40m 규모의 호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미얀마와 벌인 전쟁에서 패하여 왕조가 멸망하면서 한동안 폐허가 되었다. 그 후 방콕왕조의 라마 4세와 라마 5세 때 재건됐다. 내부는 중국 및 태국 건축 양식이 혼재한다.
<출처=태국관광청/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