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90호]2017-07-07 09:16

소개 - 의인 김만덕기념관
 
 
김만덕기념관을 찾아 나눔 진정한 의미 찾자
 
 
제주도 하면 우리는 일상에 묻혀 살면서 단순하게 관광도시로만 생각한다.

오늘날의 제주도가 존재하고 제주도민들이 살아가는 밑바탕에는 김만덕이라는 조선시대 정조대왕 집권기에 제주도에서 거상으로 활약한 김만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제주도는 오늘날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드라마로 잠간 접할 기회가 있었던 거상 김만덕을 기리기 위한 김만덕기념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김만덕기념관 입구에는 기부 받은 쌀 푸대가 쌓여 있는 등 여느 기념관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김만덕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되어 불우하게 자랐지만 이를 극복하고 거상이 되어 그근으로 죽어 가는 제주도민을 살리기 위해 전 재산을 쾌척해 제주도민을 살려 냈다. 이는 당시나 오늘에나 힘든 결정으로 숭고한 희생정신은 세계적인 성인으로 추앙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김만덕기념관을 통해 거상 김만덕의 도전 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살펴 보자.
 
 
 
오늘날 경영 마인드 실천, 시대 앞선 선각자
 
 
제주시 산지로에 자리 잡은 3층 짜리 건물은 제주가 낳은 거상 김만덕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조용하게 우리에게 다가 선다.

김만덕기념관은 개관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명소보다도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김만덕은 일반인들은 한 때 드라마에서 잠간 접해 본 게 다이고 제대로 내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김만덕은 조선시대 정조대왕시절의 제주도에서 활약한 여성 거상으로 제주도민들이 기근으로 인해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전 재산을 쾌척해 육지에서 곡식을 구입하여 제주도민을 살려낸 인물이다.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인해 끼니도 잇지 못하게 되자 정부에서 구휼미를 내려 보냈다. 그러나 구휼미를 실은 구휼선이 풍랑에 침몰하자 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곡식을 구입해 제주도민을 살려 낸 것이다.
 

김만덕의 성장 배경을 보면 성인이 아니고는 실천하기 힘든 숭고한 희생정신의 선각자라 하겠다.

만덕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기생의 몸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이어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가무를 익혀 제주에서는 잘 알려진 기생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만덕이 객주를 운영하면서 제주도 물품과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장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했다. 여기에는 글도 깨우치지 못한 만덕이 오늘날 유통업에서조차 실천하기 쉽지 않은 박리다매, 신용 본위, 정가 판매라는 3대 장사(경영) 철학을 고수한 것이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여성 기업가로 어려움에 처한 제주도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쾌척한 사회 환원의 진면목을 보여 준 점만으로도 김만덕을 기리고도 남는다.

가난한 기생 출신의 여성으로 유교 규범이 엄격하고 육지로도 함부로 나 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거친 뱃사람들을 거느리고 거상으로 성장한 것은 오늘날의 잣대로도 쉽게 이해 하기 힘든 일이다. 결국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거상으로 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부를 제주도민에게 모두 돌려 준 점은 오늘 날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다.

추사 김만덕의 선행을 기려 쓴 ‘은광연세’는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는 뜻으로 당시에도 김정희 선생이 이 정도로 평가를 했다는 점이 다시금 되돌아 봐야 할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 바쁜 일정 속에서도 김만덕기념관을 찾아 만덕의 도전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해 공감하고 본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덕의 이 같은 숭고한 희생은 정조대왕에게까지 알려져 칭송을 받고 임금을 알현할 기회가 생겼으나 벼슬을 하지 않아 알현할 길이 없음을 알게 된 정조대왕이 의녀반수라는 명예직을 하사 받아 제주를 떠나 임금을 뵙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만덕은 정조대왕의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라고 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기도 했다.

김만덕기념관은 1층에 만덕홀이 있어 지역의 각종 자선단체의 행사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기획전시실이 있어 각종 전시도 가능하다.
 

2층에는 체험관, 메모리얼관, 세미라운지, 휴게 라운지 등이 있다. 특히 체험관에는 청소년들이 방문해 만덕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직접 체험해 보는 기회도 갖고 본인들이 느낀 소감을 메모로 남길 수도 있다.

3층에는 상설 전시와 기회 전시를 할 수 잇는 전시 공간이다. 이 곳에는 만덕의 생애를 엿 볼 수 잇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잇고 조선시대 후기의 제주도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인재를 알아 보는 정조대왕을 이해 할 수 있는 내용과 만덕전을 쓴 채제공의 모습도 알 수 있다. 만덕전은 만덕이 금강산을 유람한 내용을 채제공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제주도 여성은 오늘날에도 생활력이 강하고 억척스럽다고 하는데 만덕의 거상의 모습에서 볼 수 있겠지만 자기 희생이란 점이 더욱 빛을 발한다 하겠다.

실제 오늘을 살아 가는 제주도민들도 만덕의 정신을 이어 받아 나눔 쌀 기부 행사등이 줄을 잇고 있다. 기좐, 단체, 기업체 등이 늘상 김만덕기념관을 찾아 사회 화눵 차원의 기부를 하고 있다. 김상훈 관장의 집무실 한쪽 벽면에는 기부 등을 위해 방문한 관계자들의 사진이 까득 붙여져 있다.

김관장은 “만덕 할머니의 생애와 그 분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부분도 있다”며 “세계적인 성인으로 추앙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김만덕기념관은 제주도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 속에 명실상부한 나눔·실천·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김만덕기념관은 김만덕나눔오레, 나눔대축제 등 기념관만의 차별화된 컨텐츠를 활용할 계획이며 김만덕 객주터 등 인근 관광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한 걸음 다가 가기로 했다.

여행업계는 김만덕기념관에 대해 자세히 몰랐는데 제주관광과 연계해 만덕의 생애와 숭고한 희생정신, 도전정신 등을 체험할 수 잇는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해 제주관광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상훈 - 김만덕기념관 관장
 
 
김만덕 할머니의 숭고한 나눔정신 실천해야

제시대를 앞선 경영마인드로 성공, 도민에 쾌척
 
 
“김만덕 할머니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생각하기 어려운 경영 마인드로 부를 축척하고 이를 기근에 죽어 가는 제주도민을 위해 전 재산을 내 놓으셨다는 점에서 정말 세계적인 성인이라 해도 부족할 겁니다.”

김상훈 초대 김만덕기념관장은 덩그러니 건물만 지어 진 곳에 직원 1명 없이 개관 준비를 해 2년여가 지난 오늘에도 힘들었고 어려웠던 점을 생각하기보다 거상 김만덕을 생각하며 세계적인 성인이라고 칭송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김만덕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기생이 되어 불우하게 자랐지만 글도 깨우치지 못한 여성의 몸으로 거상이 되어 제주도민들의 칭송을 받으며 부를 축적했다. 제주도에 기근이 들어 정부의 지원 곡식이 풍랑으로 바다에 빠져 온 제주도민이 죽게 되자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곡식을 구해 제주도민을 살려 냈다. 이는 기부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 성인이 아니고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숭고한 희생이라는 점을 김관장은 강조했다.
 

“정조대왕시절에 박리다매, 신용 본위, 정가 판매라는 3대 장사 원칙을 지킨 것을 보면 오늘에도 지키기 힘든 철학을 200년 전에 실천하신 분이시니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 나옵니다.”

특히 당시의 유교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또한 지리적으로 육지로 함부로 나 갈 수도 없는 환경에서 거친 배사람들을 이끌며 거상으로 한양에 까지 알려 진 것은 김만덕의 도전 정신과 시대를 뛰어 넘은 경영 마인드를 통한 부의 축적, 그리고 모든 것을 던지는 숭고한 희생 정신이라 하겠다.

김만덕기념관에는 김만덕의 이 같은 숭고한 정신을 이으려는 지역의 각종 단체, 기관, 기업체 등이 쌀 나누기 기부 행사 등이 줄을 잇고 있다.

김상훈 관장은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진다는 김만덕 할머니를 기려 쓴 ‘은광연세’가 더욱 빛을 발해 세계적인 관광도시 제주가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