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1013호]2018-01-05 10:02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도쿄의 숨은 골목, 여행 중 만나는 특별한 순간
 
 
도쿄를 여행할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맛있는 음식이나 아기자기한 기념품, 쇼핑 등이 우선일 수도 있고 대형 관광지, 복합 문화시설, 나이트클럽과 바 등 현대적인 도시 문화 자체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과는 조금 다른 도쿄의 건축 양식이나 디테일, 변하지 않는 풍경을 탐하는 여행자도 있고, 소위 ‘인사이트( Insight )’를 얻기 위한 가장 창의적인 도시로 도쿄를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이유로 방문자가 끊이지 않는 도쿄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테마가 있다. 바로 카페와 차 문화를 쫓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오래 쓰이는 것의 가치를 믿는 편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보다는 오랫동안 사용하고 간직할 수 있는 물품 위주로 소비한다.
 

물론, 서울과 마찬가지로 대형 체인 커피숍들이 번화가를 채우고 있지만, 반대로 오래된 숍과 전문 찻집들이 거리 곳곳에 숨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형 숍과는 전혀 다른 개성과 독특한 디자인, 그리고 풍부한 맛을 갖춘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을 찾아다니는 일은, 여행 좀 다녀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즐거움이다.
 

의외로 이러한 커피숍들은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다. 유럽을 연상시키는 길거리의 노천카페부터 주택가 깊숙이 자리해 있어 간판조차 찾기 어려운 원두 집, 마스터 혼자 하루 종일 사람을 맞는 숲 속의 찻집 등 대부분 투박하며 심플하다. 그리고 열심히 보거나 일부러 찾으려 하지 않을 때 자연스레 선물처럼 등장한다.

지나치게 친절한 여행지‘틱’한 풍경과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줄을 서고 있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에 질려 있다면, 도쿄의 이색 커피숍에서 한층 여유롭고 소중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해 보자.
도쿄=글·사진 여행작가 김빅토 victoriakim916@gmail.com
 
 
블루보틀(Blue Bottle)
파란색의 작은 병, 혹은 커피업계의 애플이라고 불릴 정도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블루보틀. 심플하고 깔끔하며 무엇보다 신선한 원두를 최고의 가치로 지향해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는 최고의 커피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비전 아래 로스팅 한지 48시간 이내의 스페셜티 원두만을 제공하고 있다.
뉴욕, LA, 도쿄 등에 지점이 있으며 내년 한국 진출도 이미 가시화 된 상태다. 개인적으로 블루보틀에서 받은 느낌은 심플함이다. 과하지 않은 내부 디자인, 점원들의 적당한 서비스 마인드, 유리잔에 따라주는 아메리카노의 신선하고 씁쓸한 맛 등이 그것. 조미료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담백한 국물을 마셨을 때와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억측일까?
 

도쿄에는 현재 기요스미 시라카와, 아오야마, 신주쿠, 롯폰기까지 총 4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최대 인기 스팟은 역시 1호점인 기요스미 지역. 정원과 미술관, 편집 숍, 로컬 마켓 등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매일 아침, 커피를 사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숍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장관을 이룬다. 다소 구석에 위치한 롯폰기 블루보틀 점은 다른 지점에 비해 사람이 적기 때문에 번잡함이 싫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네즈미술관 카페 (NEZU MESEUM CAFE)
명품 거리인 오모테산도에 자리한 네즈미술관은 미술관 본연의 역할 외에도 여러 가지 예술이 집합된 공간으로 유명하다. 남다른 건축 양식과 전시관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 미술관 전체를 에워싼 푸른 정원까지 모든 면에서 퀄리티를 자랑하기 때문. 특히 여름이 한창인 6월부터 8월 사이 미술관을 방문하면, 나무와 숲, 정원이 주는 녹색의 풍경과 향에 상당한 치유를 받는다. 총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대나무가 촘촘히 들어서 있는 입구도 유명하다. 네즈 카페는 위치적으로는 미술관 뒤쪽, 정원과 마주하고 있는데 막상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정원 한 가운데에 속해 있는 느낌을 받는다.
 

통유리를 사용해 사방으로 빛이 들어오고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커피나 디저트, 식사도 물론 가능하지만 조금 색다른 메뉴를 즐기고 싶다면 말차를 추천한다. 말차는 연차를 돌절구로 찧어 분말로 만든 일본 전통차로 상당히 찐한 녹차라고 이해하면 쉽다. 말차와 함께 나오는 꽃 모양의 경단은 당연히 필수다. 물론 혀에 닿는 순간 곧바로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맛이 쓰기 때문에 단 것을 좋아한다면 정을 붙이기가 어렵다. 커피 후에는 정원을 산책해보자. 정원이 주는 평온함과 정원 곳곳에 자리한 조각상들이 익숙하지 않은 사색의 세계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분단 카페(BUNDAN COFFEE&BAR)
‘하루키의 소설이 카페의 메뉴로 등장한다면?’ 일본 근대문학관 내에 자리한 커피숍 ‘분단’은 커피 맛이나 분위기 보다는 메뉴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유명 소설의 내용을 착안해 음식 메뉴를 만들거나 소설 제목을 와이파이 비밀번호로 사용한다는 식. 분단은 우리말로 문단을 나타내는 데 일본 현지 문인들의 방문도 심심찮게 이뤄진다고 한다.

커피숍은 상당히 작은 규모. 들어가면 바로 앞으로 주방이 보이고 전체 테이블은 고작 10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쪽 벽면은 오래된 서적으로 장식돼 있어 답답할 정도. 레스토랑 겸업인 만큼 조식 메뉴, 규동, 스파게티 등의 식사 메뉴도 잘 갖추고 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 각자 노트북을 들고 일을 하거나 종이에 필기를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 조용한 분위기이다. 작가지망생이라면 그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서라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분단 카페에서 커피를 먹고 디저트까지 챙겼다면 2층에 자리한 전시관과 근대문학관주변도 함께 방문해보자. 일본 전통 가옥과 연못, 정원, 대나무가 빽빽한 숲 등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참고로 근대문학관에서 도보로 20분 정도만 이동하면 일본민예관이 위치한다. 일본의 과거 생활용품은 물론 한국, 중국, 유럽 등 각국의 민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긴자 마리아주 프레르(MARIAGE FRERES)
도쿄는 홍차의 도시다. 커피 못지않게 다양한 홍차가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고급스러운 티룸과 백화점 매장, 홍차 전문 숍들이 즐비하다. 물가 높기로 소문난 도쿄에서도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어 젊은 사람들보다는 중년의 부인이나 외국인들이 주로 가게를 찾는 편이다. 사실 홍차에 대해서는 맛이나 종류, 향 등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약간 비싼 보리차를 먹는 느낌이랄까. 제대로 옷을 차려 입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긴자에서는 마시는 홍차 한 잔과 타르트는 여행에 있어 가장 달콤한 순간을 만들어줬다. 여자라면 한 번쯤 나이를 막론하고 공주(=여왕)가 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즐거움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는 셈이다.
 

긴자 마리아주 프레르는 아주 오래전부터 홍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문난 장소. 1층은 홍차를 파는 일반 매장으로 2,3층은 티룸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장을 입은 남자 점원들이 격식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손님이 홍차를 주문할 시 어울리는 타르트나 케이크를 함께 추천해준다. 은색의 주전자에 가득 담겨 나오는 따듯한 홍차 한 잔과 그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식기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도라노몬 커피(TORANOMON KOFFEE)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도라노몬 커피숍. 도라노몬 힐스 1층에 자리해 있으며 매장은 크지 않아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뒤 힐스 정원에서 도심 풍경을 보며 마시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대형 부스 형태를 띠며 깨끗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커피를 주문하면 마스터가 바로 앞에서 직접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단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은 먼저 이해를 구하는 편이 좋다. 시그니처 메뉴는 아이스 카푸치노. 단맛이 적고 크림이 풍부하며 무엇보다 향이 탁월해 여성 고객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 도라노몬 힐즈는 일본 도쿄 도 미나토구에 건립된 총 52층, 높이 247m의 초고층 복합 타워로 다양한 사무용 오피스를 비롯해 세미나 및 컨퍼런스룸, 안다즈 호텔, 레스토랑, 쇼핑 점포 등이 들어서 있다. 타워를 상징하는 캐릭터는 22세기 도쿄에서 찾아 온 고양이형 비즈니스 로봇 ‘도라노몬’이다. 최고 히트 상품은 47부터 52층까지 위치한 ‘안다즈 도쿄’. 일본에 처음으로 진출한 하얏트 그룹의 럭셔리 호텔이며 게스트 개개인에게 일본식 접대를 제공해 마치 자신의 집인 듯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밖에 6000㎡의 야외 공간도 도라노몬 힐스만의 장점. 잔디로 덮인 ‘오벌 광장’과 인접한 오픈 테라스 점포 등 확장된 공간 역시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북스도쿄도 (BOOKS Tokyodo)
도쿄는 ‘서점의 미래’ 혹은 ‘책방의 변신’ 등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도시다. 계속적으로 판매량이 줄고 있는 책과 대형 서점에 밀려 자리를 잃어가는 중소형 책방들의 생존은 모든 대도시들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도쿄의 경우 이러한 위기를 단순 서점이 아닌 문화/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의 재탄생으로 이겨내고 있다. 때문에 도쿄에는 서점과 연결된 카페나 문화 공간 등이 많은 편이다.
 

북스도쿄도 또한 서점과 커피숍을 합친 북카페로 진보초 거리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단출하지만, 책 한 권 편하게 읽으며 차와 간식을 즐기기에는 모자람이 전혀 없다.
진보초 지역은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오래된 책방들이 하나 건너 하나씩 촘촘히 이어지는 대표적인 고서적 거리. 책 뿐 아니라 빈티지한 소품, 사진, 그림, 영어원서, 엽서, 문구류 등을 만날 수 있고 100년도 넘은 가게와 다방에서 짧은 시간여행도 즐길 수 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펼쳐 놓은 책들은 겉표지가 정말 낡고 낡아서 혹시라도 책이 상할까 함부로 손을 데기가 어렵다. 사진 촬영은 당연히 금지다.
 
 
 
베어 폰드 에스프레소(BEAR POND ESPRESSO)
시모기타자와는 아사쿠사, 신주쿠, 시부야, 히라주쿠 등 익숙한 도쿄 관광지에 질린 사람들에게 최근 대안으로 급부상한 지역. 대학가 주변을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편집숍과 레스토랑, 술집 등이 즐비하고 소규모 공연장이나 라이브 바 또한 많이 자리해 있어서 음악을 즐기려는 현지인들의 방문이 잦다. 실제 지하철역에 내리면 입구부터 큰 기타나 악기를 메고 빈티지한 의상과 헤어로 무장한 자유로운 영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재밌다.
 

베어 폰드 에스프레소는 시모기타자와에 자리한 작은 커피숍으로 <드리프트>라는 유명 커피 잡지가 도쿄의 수많은 커피숍 가운데 1위로 선정할 만큼 명성이 대단한 곳이다. 그렇다고 규모가 크거나 주인이 친절한 편도 아니어서 호불호가 갈린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라떼는 확실히 일반 커피숍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고소하고 입안에 풍부하게 여윤이 남는 느낌이랄까? 직접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하루에 딱 10잔만 판매한다는 엔젤 스테인 커피는 이 집만의 비밀 메뉴다. 간판이 크지 않아 쉽게 지나칠 수 있는데, 건물 외관 전체가 흰색으로 덥혀있고 입구 앞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커피숍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은 불가능 하다.
 
 

무인양품 커피숍 (MUJI)
전 세계에 무려 7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무인양품.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다(Nothing, yet everything)”라는 운영 철학처럼 단순하지만 일상적인 디자인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다.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눈여겨봤을 무지 커피숍이 마지막 추천 리스트다.
 

여행 중 거의 모든 일본 대도시에서 무인양품 숍을 만날 수 있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곳은 단연 유라쿠초역에 자리 한 본점. 이 곳은 무지가 운영하는 매장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여백을 살린 특유의 공간 디자인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무지 특유의 철학이 반영 된 무채색 의류와 생활용품, 인테리어 소품, 책까지 의식주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다. 2층 맨 끝에 자리해 있는 커피숍은 커피와 스낵, 간단한 식사와 디저트 등을 즐길 수 있으며 맛 자체는 사실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무지 매장을 충분히 구경하고 한 뒤 잠시 쉬고 싶거나 허기가 진다면 꼭 방문해보자. (개인적으로는 우우가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추천한다.) 뭐 커피 맛이 조금 부족한들 그리 큰 문제일까. 여기가 바로 ‘무지’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