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704호]2011-04-25 09:35

[르포] 개별여행지 서울


‘FIT in seoul’ 멀고도 험하다!

동남아관광객 유치 위한 인프라 폭탄 수준

통역 및 가이드북 서비스, 현지 언어 전무

일본, 중국관광객에만 안내서 등 집중돼

통역안내사 확보 등 본격적인 지원 필요


한가로운 평일 낮 오후 서울 명동, 인사동, 남대문 등을 둘러봤다. 가벼운 산책을 즐기거나 연인 및 친구와 한낮의 데이트를 즐기는 현지인들 사이로 둘, 셋씩 무리 지어 다니는 일본, 중국관광객을 만나는 일이 빈번했다. 서울 도심 주요 관광지에 자리를 낸 상인들은 간단한 일어와 중국어쯤은 자유로이 구사하며 관광객들을 상대로 열심히 흥정을 벌였다.

사람을 구한다는 종이를 문 앞에 붙인 대부분의 가게는 일어와 영어 가능자를 환영한다고 했다. 이제 서울은 일본, 중국, 구미주에는 전혀 거리낌 없는 글로벌한 관광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게 전부일까?


▲동남아-서남아, 신흥 관광 시장 선언

 

법무부가 4월부터 동남아시아 지역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이었던 비자 제도를 대수술 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우리나라의 주요 타깃 시장이었던 중국과 일본을 넘어 신흥관관광시장인 동남아를 공략, 수요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에서다.

법무부가 공개한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 대상국은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미얀마, 파키스탄, 스리랑카, 캄보디아, 네팔, 방글라데시, 라오스 등 11개국. 지난해 이들 국가의 총 입국자 수는 674,819명이었다. 이번 비자 제도 개선으로 이들 국가의 관광객 증가가 지난 2009년 비자제도를 개선한 중국과 유사하게 나타날 경우 2012년까지 이들 11개 국가 관광객의 방한 규모는 약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렸다. 시장 활성화와 비자 간소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결합하면, 오는 2012년 우리나라를 찾는 동남아·서남아 관광객이 약 17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것.

관광객 170만명 유치를 경제적 효과로 환산해보면, 약 2조 8,750억 원의 외화 획득 효과(동남아·서남아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액 1,473$ 계산: 2009년 외래관광객 실태 조사)와 4만 5,425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고용계수: 10억 원당 고용 창출 인원 15.8명)로 나타난다.

그러나 단순히 비자 제도 간소화로 인해 시장이 확대될 수 있을까?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서울 근교를 돌아다닐 때 과연 합당한 서비스와 맞춤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일본, 영어권 관광객 환영

 

가까운 주말, 서울 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한국인지 해외인지 헷갈릴 정도로 거리를 채우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외국인이었다.

인사동에 자리한 많은 기념품점과 갤러리, 전통 찻집, 떡집 등에서는 어김없이 일본어가 들려왔다. 손님을 상대하는 일도 가게 안으로 일본인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한 호객 행위에도 일어는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일본 대지진 여파로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급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인사동과 종로 3~5가 지역, 명동 등은 아직도 일본관광객들을 상대한다. 특히 롯데백화점, 롯데영프라자, 신세계백화점, 명동 눈스케어 등 대형 쇼핑센터와 로컬 숍이 즐비한 명동 일대는 일본, 중국, 미국인 등이 모여 글로벌한 한인타운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인사동에 위치한 한 떡집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일본 여학생이 서빙을 보고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며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그녀는 주말에는 꼭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주말에 특히 일본 손님이 몰리면서 가게측에서 직접 대학교에 의뢰를 했다고.

명동 입구부터 한 줄로 붙어서 이어져 있는 다양한 화장품 가게에서는 동시에 세 개의 언어가 들려왔다. 점원들이 한국어, 일어, 중국어를 번갈아 외치며 지나가는 손님들을 붙잡은 것. 인기 한류스타를 광고 모델로 활용하고 있는 A화장품사는 아예 광고 판넬에 일본어로 광고 문구를 삽입, 일본관광객들이 주요 고객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을 위한 현지 언어는 들리지 않았다. 인사동, 덕수궁, 청계천, 한국관광공사, 명동, 북촌한옥마을, 동대문, 남대문 까지 서울 곳곳을 둘러봤지만 현지 언어를 구사하거나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한 관계자는 이태원을 제외하면 동남아시아 현지 언어를 듣거나 전문 식당을 찾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며, 간혹 단체를 유치해 한국에 와도 소홀한 느낌을 받는다고 속내를 고백했다.


▲현지 언어 서비스 전무, 안내소 책임자도 나 몰라라~

 

인사동 거리에는 총 세 개의 관광안내소가 위치해 있다. 각 안내소에는 한국을 홍보하는 다양한 관광 안내 지도와 전단지가 있지만 대부분 영어, 중국어, 일어로만 제작됐을 뿐 동남아시아언어로 구성된 책자는 전혀 없다.

인사동 초입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관광안내전화는 아예 메인 화면에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세 개 언어만 표시해 놓았다.


인사동 관광홍보센터를 직접 방문해 말레이시아 언어 서비스가 가능하냐고 묻자 담당자는 그런 서비스는 아직 제공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홍보센터에서 나와 밖을 보니 베트남에서 온 여자 관광객 4명이 지도를 펼쳐들고 길을 찾고 있었다.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한들 한국식 영어와 안내 지도는 그들에게 분명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명동 역시 마찬가지. 명동여행정보센터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협소하게 위치해 있어 현지인들조차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곳에서도 역시 동남아시아 언어로 제작된 안내 가이드북이나 서비스는 찾을 수가 없었다.

비단 가이드북과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명동 곳곳에 위치한 환전소와 은행들 역시 거래 가능한 외화 정보를 달러, 엔화, 위엔화, 유로화로만 표시했다. 일반 환전소를 찾아가 급해서 그런데 필리핀 화페인 페소가 있냐고 물었다.

이후 직접 환전소 안까지 들어가 다시 15분 남짓을 기다려야 돈을 환전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일본인 관광객 3명은 밖에서 빠르고 손쉽게 환전을 끝마쳤다.

명동에서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봉사자들을 만나,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 관광객들이 현지어를 요청하지 않냐고 했더니, 대부분 영어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될 것 없다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 반응을 묻자 오히려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다.


▲동남아권에 대한 배려 필요해

 

외국계,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 그룹과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한국 업체들은 대부분 이들의 국민성과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홍보회사 과장은 “동남아시아는 우선 종교에 매우 민감하다. 한국으로 관계자들을 초청하면 의상이나 기도시간, 식성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북미나 유럽권에 비해 응대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행사 실무진은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 더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작은 추위에도 매우 어려워한다. 관광공사에서 겨울과 눈이라는 테마로 관광객들을 유치했다고 광고하는데 그럼 일 년 중 겨울에만 관광객을 유치할 것인지 답답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 한국을 찾은 아시아 관광객수는 모두 6,749,222명. 말레이시아가 113,675명, 필리핀 297,452명, 베트남 90,213명, 인도네시아 95,239명 등이었다. 모두 전년대비 각각 10~20% 증가한 수치다. 시장 규모는 매년 성장하는데 우리 인프라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