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501호]2007-03-16 09:08

[유인태]크루즈인터내셔널사장
크루즈라이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여행을 즐기는 동안 예정 비행기의 운항이 취소되거나 수화물이 배달되지 않아 난처했던 일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더구나 이후의 일정이 크루즈일 경우에는 그 난처함이야 이루 말하기 어려운 일. 푸른 바다위에서 연출될 수많은 상상과 기대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필자가 최근 경험한 일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였다. 파리에서 제노아행 비행기로 연결 예정이었는데 항공이 취소되고 밀라노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 가방은 아직 파리에 있고 당연히 호텔이 제공되리라 생각했는데 그 늦은 시간에 또 제노아 공항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니. 도착해보니 공항은 깜깜하고 택시도 운행하지 않아 막막할 노릇이었다. 특히 이번 여행은 크루즈 내에 공식 회의도 잡혀 있는지라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지만 다음날까지 가방이 배달되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그냥 승선해야만 했다. 자칫 잘못 처리하면 가방은 계속 크루즈를 따라 다닐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 이번 크루즈는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 될 처지였다. 결국 가방은 아예 최종 목적지로 배달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크루즈 내에서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인데 난처한 것은 필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인정되어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오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선상에서 제공된 서바이벌키트로 일주일을 버틸 수는 없고 우선 공식행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피트니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청정공기를 마시며 조깅도 할 수 없으니 이 좋은 곳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중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헛된 수고는 없는 법, 이렇게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내게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사실 망망대해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할 여유는 많지 않다. 바다보다 깊이 호흡하며 느끼는 세상은 턱시도 차림의 화려한 파티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다가오고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대화도 살아가는 지혜로 바뀌었다. 그중에 8명의 자녀를 두고 부인을 애플파이라고 호칭하며 행복을 전파하는 필리핀 친구와 갑판에서 나눈 대화는 지금까지도 내 삶의 조정간이 되고 있다. “집이 불에 타면 다시 지으면 되고 사업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지만 아이들은 한번 자라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항상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크루즈를 통해서 지금까지는 경험할 수 없는 고요함과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 가방이 도착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이렇게 좋은 경험을 준비한 것이라고 믿으며 어느 크루즈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선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은 미래를 알 수 없게 하신 것이란 말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