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784호]2013-01-11 12:53

[르포] 걷기열풍그 후 두 다리는 안녕한가요?

인기는 상승하는데 시설물은 제자리, 국내외 관광객 배려 없는 걷기 코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른 바 ‘걷기코스’가 열풍이다. 전국의 걷는 길은 지난 2008년 새 정부 들어 정부의 녹색정책사업 일환으로 자전거 길과 함께 적극 조성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길을 만들면서 길 포화상태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작은 동네에도 이름 없는 길이 없을 정도로 걷기코스는 빠르게 생산됐고 급하게 소비됐다.

현재 걷는 길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정부 부처와 기관은 모두 7곳에 이른다.

제주 올레 길을 시작으로 전국에 확산되고 있는 걷기 코스가 과연 언제까지 시민의 사랑을 받을 지는 미지수. 수많은 걷기 코스 중에서도 서울 도심 한복판의 걷기코스인 ‘북촌한옥마을’과 ‘남산둘레길’을 직접 걸어봤다.

글·사진=강다영·엄슬비 기자 titnews@chol.com


‘서울 명소 1위’에 빛나는, 남산 둘레길

 

지난해 12월 취재차 방문한 남산 둘레길은 외국인관광객이 뽑은 서울 명
소 1위로 유명한곳이다.

남산 둘레길은 남산 중턱에 조성된 걷기 좋은 길로 북으로는 종로, 남으로는 용산일대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다.

높이가 높지 않아 다양한 연령대가 무리 없이 즐기기 좋은 코스이며 푹신한 탄성 포장길로 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설계했다.

남산둘레길은 N서울타워를 기점으로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하면 파악이 쉽다. 이 길은 본래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였지만 공원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이 도로를 차지하게 됐다.

현재 북측순환로는 전면 차량 통제했으며 남측순환로는 2011년 5월부터 순환버스만 통행할 수 있게 했다. 남산둘레길코스는 케이블카 방면코스, 남산도서관 코스, 하얏트호텔 코스, 국립극장 총 4가지 코스로 구성돼있다.

충무로 4번 출구에는 남산으로 향하는 지선버스가 운행한다. 정류장 버스 안내판에는 남산행 버스가 정확히 구분돼 있어 버스를 탑승하는데 혼동이 없었다.

취재 당일 폭설이 내렸음에도 불구, 남산에는 많은 중국, 일본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동남아 관광객의 증가추세를 증명하듯 동남아 관광객도 적지 않은 모습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남산 정상에 있는 편의점에서는 한류관련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일주코스거리는 8km 남짓. 코스완주 소요시간은 사이트상에는 총 2시간30분정도라고 기재돼 있지만 취재결과 보통걸음으로 약 3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됐다.

둘레길은 중간마다 남산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포토아일랜드가 설치돼 있었지만 별도의 쉼터공간은 미흡했다. 출발한지 5분. 남측순환로로 접어드는 순간 코스도로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첫 번째 문제점은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다는 것, 즉 차량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위험했다. 남산통행 버스와 외국인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여행객들은 뒤에 버스가 오는 낌새도 못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 심지어 버스기사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아 위험천만한 순간이 비일비재 했다.

두 번째로는 길옆에 나있는 ‘틈새(물이 흐르는 도랑)’문제이다. 보행자들은 버스를 피하려다 몇 번이나 발을 틈새에 빠뜨렸다.

이날 남산을 찾은 한 여행객은 “둘레길을 찾은 방문객들이 길 옆 도랑에 발이 빠져 발목부상을 입은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며 위험을 알렸다.

또한 둘레길을 걸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긴급 상황을 위한 별다른 안전시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직 남산 정상 N서울타워에 위치한 ‘서울용산경찰서 남산공원안전센터’가 있을 뿐. 화장실이나 편의점 등 편의시설 또한 N서울타워 주변에 집중 돼 있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둘레길을 걷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염화칼슘이나 미끄럼방지를 위한 예방책이 달리 없어 보였다. 또한 코스 시작점과 끝지점에 걷기코스에 대한 전체적인 안내판, 안내책자 또한 보이지 않았다. 사전 정보검색 없이 남산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걷기코스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과거와 현대의 이색적인 조화, 북촌 한옥마을

북촌한옥마을은 지난해 11월6일 서울관광마케팅(주)이 총 1,286명의 홈페이지 방문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도보관광 희망코스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코스’로 선정된 곳이다.

북촌한옥마을 근처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쉽다.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를 통해 빠져나오면 그 일대가 모두 북촌한옥마을 걷기 코스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지하철에서 출구로 빠져나가기 전 확인 차 살펴본 주변지역안내도에는 북촌한옥마을이 없었다. 혹시나 ‘내가 못 찾은 건 아닌 가’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덕분에 안국역 지하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3번 출구 옆 2번 출구로 빠져나가게 됐다. 다행히 출구로 나오자마자 북촌한옥마을 행 표지판이 한 블록마다 설치돼 있었다.

한국어 관광안내책자를 얻고자 들른 관광안내소에는 영어, 중어, 일어로 된 지도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영어 지도를 건네는 안내소 직원에게 한국지도는 없느냐 물으니 한국어 지도는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어 지도를 구하려면 따로 북촌문화센터에 문의해야 한다.

북촌한옥마을 걷기에 앞서 들여다 본 지도는 온갖 길이 혼재 돼 방향감각 제로인 사람에게는 그저 알아볼 수 없는 약도에 불과했다.

북촌한옥마을 도보관광 코스는 북촌한옥마을 코스와 북촌8경 코스로 나뉘어 있다. 기자는 북촌 8경 코스를 선택해 취재에 나섰다.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30분으로, 본 코스는 북촌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8곳을 지정해 방문객을 위한 포토스팟을 설치한 곳으로 유명하다.

1,2경과 3경 사이 위치한 돈미약국에서 약 10~15분 걸으면 북촌1경이 나타난다. 돌담 너머로 창덕궁이 보인다 하여 1경. 그러나 실상은 1경 앞의 무수한 자동차들로 어지럽혀진 모습이었다.

2경도 마찬가지. 다시 나머지 3,4,5,6,7,8경을 보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 3경에 도착했다. 3,4,5,6경까지는 비교적 걷기 쉬운 길이 이어졌고 코스 또한 찾기 쉬웠다. 아쉬운 점은 5경의 포토스팟 바닥 타일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는 것. 5경을 찾은 관광객들이 자국만 남은 포토스팟 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다음 코스인 7경은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내 찾은 7경은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골목이 아닌 회색 세단에 가로막혀 빛을 잃은 그냥 골목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예전부터 7경의 골목은 이곳 주민의 주차공간으로 이용돼 많은 관광객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아쉬운 7경을 뒤로하고 8경으로 나서는 길.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찾기가 어려운 곳. 8경은 종이로 써 붙여둔 북촌전망대 표시물 쪽으로 골목을 빠져나가 아래로 향한 계단으로 내려가면 된다. 8경의 돌계단까지 보면 비로소 북촌8경 걷기 코스가 끝난다.

2시간짜리 걷기 코스에는 관광객을 위한 공중화장실이나 제대로 된 코스표시가 없었다. 오로지 지도와 책자에만 의존해 생리현상도 무시한 채 걸어야 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북촌한옥마을 걷기 코스에 필요한 것은 이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시설물을 갖추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