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06호]2013-07-05 15:39

현지취재 체코(下)

영원한 이방인 유대인의 삶 속으로

코트나 호라와 해골성당 흐라덱 엿보기, 잡초 같이 흩어진 비석 사이로 눈물

글 싣는 순서

<上>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

●<中> 유대인 묘지와 해골 성 흐라덱(Hradek)

프라하 시가지 동북쪽에 유대인 거주지가 있다. 1200년대부터 각국을 유랑하던 유대인에게 보해미아에서 실시한 유대인 유화정책으로 일정지역 땅을 주었는데 그들이 정착한 땅을 프라하 게토(Ghetto)라 불렀다. 프라하 게토 지역에 유대인 묘지가 있다. 매일 이 곳을 찾는 유대인이 줄을 잇는다.

유대인은 늘 외롭고 쓸쓸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반면 사회, 경제, 예술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하게 동화되고 대성공의 길을 걷는다 해도 유럽에서 유대인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다. 줄곧 인간의 삶을 기적이라 표현하는데 유럽 역사속 그들의 생존 또한 기적이었다.

묘지 입구에 작은 문이 있다. 기골이 장대한 남자 몇 명이 표를 받으며 방문객을 입장시키는데 꼭 죄수들을 가둔 감방 문처럼 철로 만든 문을 열어 준다. 철문이 열고 닫는 소리가 영화에서 스산한 바람이 부는 밤 입가에 피를 흘리는 드라큘라가 성곽의 육중한 문이 열 때 내는 소리 같이 음산하다.

입구를 지나 첫 번째로 당도한 곳은 클라우소바 시너고그(유대인 예배당)다.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정리되지 않은 어설픈 공동묘지와 함께 있어 그런지 으스스한 기분이다.

벽에는 일순간의 행복을 영원처럼 살다가 간 유대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 가득하다. 단지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영문도 모른 체 마루타로 희생된 생명들. 죽음을 예견치 못한 어린 생명들이 그린 봄과 꽃, 나비와 새, 창공을 향해 날리는 종이비행기, 비상하는 새 등 순박한 꿈과 희망의 그림들.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클라우소바 시너고그와 연결된 핀카소바 시너고그의 벽에는 2차 대전에 나치에게 죽어간 체코의 유대인 7만 7천 297명의 명단이 알파벳 순서대로 깨알 같이 적혀 있다.

“한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 많은 생명을 처단했다니…”

체코=남기수 기자 titnews@chol.com


▲관광객의 필수 방문지 게토

시너고그 바로 옆에 유대인 공동묘지가 있다. 대낮인데도 음산한 냉기가 밀려오는 것 같아 멈칫거리다가 들어섰다.

묘지에는 입구부터 알아보지 못하는 문자로 새겨진 회색 비석들이 마치 몇 년 동안 비워둔 촌가에 자란 잡초 같이 꽂혀 있다.

공동묘지라고 하는 땅이 눈짐작으로 500여 평 정도, 이 좁은 땅에 10만 명에 가까운 시신을 매장했다니. 묻힌 곳에 또 묻히고 한자리에 열 두 구의 시신이 수직으로 묻혀 있다고 한다.
 
망자의 이름이 쓰인 비석들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려 부서지고 넘어진 모양만으로도 유대인들의 가혹한 생애를 짐작케 할 수 있다.

프라하 게토는 이런 비극을 안고 있는 유대인지구였으나 지금은 게토의 사실상 의미보다 시너고그(유대교회당)와 유대인 무덤 등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탈바꿈 되고 있다. 연간 1억 명이 다녀가는 관광의 도시 프라하, 훌륭한 경관과 문화유산이 양지라면, 유태인의 상처를 안고 있는 게토지역은 음지다.

게토지역을 나오면 파리즈스카 거리로 이어진다. 루이비통, 디올, 헤르메스, 까르띠에, 살바토레 페라가모, 랄프 로렌, 불가리 등의 명품숍이 줄지어 있다. 공동묘지와 고급 상품들이 늘어선 현대식 거리가 공존하는 프라하는 세계 어느 관광지 보다 값진 의미의 관광지다.

▲체코의 은(銀) 보물창고 코트나 호라(Kutna Hora)

해골성당 흐라덱은 프라하에서 동남쪽으로 70Km, 버스로 약 1시간 떨어진 인구 2만의 작은 도시 코트나 호라(Kutna Hora)에 있다. 코트나 호라는 막대기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으로 한 때는 은 채굴이 많아 체코 다음으로 번창 했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1천 년 전 수도사 안톤이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은막대기 3개가 땅속에 있었다.

그 곳을 파 보았더니 어마어마하게 매장된 은 광맥이 발견되었다 한다. 코트나 호라는 은광맥 때문에 200년 동안 막대한 부를 누렸다. 지금도 그 때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1905년에 완공된 성 바바라 성당(Saint Barbara Cathedral)이 그것이다.

이 성당은 정면보다 측면이 화려하다. 특이한 것은 고딕양식이지만 천장과 벽면에 프레스코 양식이 남아 있다.

이 성당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물로 은 채굴이 활발할 당시 전국에서 모여 든 광부들의 헌금으로 짓기 시작 했으나 은 생산량이 줄고, 오랜 종교전쟁 때문에 완공까지는 600년이란 긴 세월이 소요 됐다.

성당 내에는 광부들의 생활을 조각해 놓았다. 광부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직업이므로 광부의 수호신인 성녀 바바라에게 봉헌 했다고 한다. 성당과 연결 된 곳에 과거에 제스이트 교구와 학교로 사용한 건물이 있다.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옆엔 화폐 주조소로 사용한 이탈리안 저택이 있고 은광박물관에는 채굴장비, 광부들의 생활과 복장, 그 때의 주조모습도 시연하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4만 명의 유골 예술로 처리한 흐라덱(Hradek)

성 바바라 성당에서 체코성인 석상들이 길게 늘어선 돌길을 따라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해골성당 흐라덱이 있다. 정면에서 보면 그저 평범하고 치장이 없는 작은 성당이다. 엄밀히 말하면 성당이 아니라 공동묘지 교회 지하에 위치한 납골당(Sedlec Ossuary)이다.

14세기에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3만 명이 이 공동묘지에 묻혔다. 15세기 초반 보헤미아의 후스파(派)가 종교상의 주장을 내걸고 독일황제 겸 보헤미아왕의 군대와 싸운 후스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과 광부로 일하던 유대인도 이곳에 묻혔다.

1400년경에 공동묘지 한 가운데에 로마 가톨릭교회를 건립하면서 엄청난 양의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지하납골당을 마련하게 됐다. 1511년에 시각장애인인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사가 무덤에서 나온 뼈들로 내벽을 장식했다.

1870년부터는 체코의 나무 조각가 프란티섹 린트(Frantisek RINT)가 화려하고 정교한 솜씨로 예술성이 높은 장식물을 만들었는데 장식에 쓰인 뼈들은 모두 소독처리를 한 뒤 회칠을 했다. 작품에 쓰인 뼈의 개수만 약 4만-7만 명분이나 된다. 입구에서 한국어로 만들어진 설명서도 준다.

해골로 만든 첼로 모양의 장식물도 있고 대퇴골, 정강뼈 등으로 만든 슈바르젠베르그(Schwarzenberg) 가문의 문장과 왕관도 있다. 또 인체의 모든 뼈로 대형 샹들리에를 만들어 놓았고, 납골당 네 귀퉁이에 설치된 피라미드 모양의 장식물은 해골이 서로 묶이지 않고 쌓여있다. 이 조그만 납골 성당 흐라덱을 찾는 방문객 수가 연 간 20만 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