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29호]2014-01-10 16:18

태국(下 )태국을 알고 싶을 때 난(NAN)으로 가자

시골 인심 남아 있는 북부의 평온한 도시

오랜 기간 독립 왕조 유지해 독특한 매력

 

글 싣는 순서

태국<上> 역사가 시작된 곳, 수코타이
●태국<下> 태국 북부의 숨은 보석, 난(NAN)

 

 

난은 태국 북부에 위치한 조용한 소도시로 오랜 기간 독립적인 왕조를 유지해 태국 란나 왕조와 란쌍 왕조(현재의 라오스)를 연결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유독 난은 다른 태국 도시보다 라오스의 영향을 받은 사원과 수공예품이 발달했다. 난을 여행하며 발견하는 옛 란나 왕조의 흔적과 라오스 문화는 순수한 난 사람들의 미소와 어우러져 더욱 특별해진다.

기자가 느낀 난은 문화적 충격을 주거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머물수록 느껴지는 평온함으로 어느 샌가 여행자의 옷깃을 꼭 붙드는 진득한 여행지였다.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이 더 아쉽고 애틋했던 곳.
아침시장의 은근한 활기와 노을 진 고요한 난의 오후 풍경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취재협조 및 문의=태국정부관광청(www.visitthailand.or.kr/02-779-5417) / 태국 난=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난을 보고 배우고 느끼다 난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

 

 

난은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고 오랜 기간 독립 왕조를 유지했기 때문에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 난을 본격적으로 여행하기에 앞서 여행의 이해도를 높이기에 딱 좋은 곳이 있다.

바로 ▲난 박물관. 현재는 박물관이지만 과거에는 난의 통치자 프라 짜오 쑤리야뽕빠리뎃(Phra Chao Suriyapongpalidet)이 살았던 곳이다. 1972년에 박물관으로 개방된 곳으로 총 2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은 태국 북부지역 전통 목조주택을 비롯해 사냥도구, 의복, 신앙, 전설 등 과거 생활양식을 모두 전시하고 있다.  특히 1층에는 불상이나 오래된 사원 외에도 난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의 과거 생활상을 전시하거나 당시의 사진을 공개해 방문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샤워는 일 년에 단 두 번, 비올 때와 이사를 위해 강을 건널 때만 한다는 게으른 마브리 족과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를 좋아하는 야오스 족, 태국어와 라오스어를 함께 쓰는 타이르 족 등 성격과 생활상이 모두 다른 소수민족들이 어우러져 현재의 난을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2층에는 다양한 형태의 불상과 그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 초기 사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했다. 난 박물관의 입장료는 외국인은 100바트, 태국인은 20바트다. 난 박물관으로 난 여행에 대한 이해도를 한껏 높였다면 본격적으로 난을 탐방할 차례다.

난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왓 루앙(Wat Luang)은 500년이 넘은 왕실 사원으로 ‘루앙’은 왕, 큰, 중요한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화려한 황금 쩨디(불탑)가 눈을 사로잡는 왓 루앙은 코끼리 상이 많아 코끼리 사원(왓 프라 탓 창캄, Wat Phra That Chang Kham)이라고도 불린다. 사원 내부는 대형 불상 아래 향을 피워놓고 기도 하는 사람들로 엄숙함이 가득하다.

이곳에는 특별한 불상이 있다. 바로 사원 밖에 마련된 ‘하루 만에 완공된 부처님 상’. 이곳은 크기는 작지만 그 기도빨(?)이 어마어마해서 왓 루앙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기도를 드리고 가는 곳이다. 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소원을 이곳에 빌고 그 소원이 이뤄지면 다시 와서 감사를 표시하는 것까지가 이 불상에 얽힌 전설이다.

부처님 상 앞에 간절한 소원을 담은 향초 세 개를 꽂아 놓고 다음 목적지 ▲왓 푸민(Wat Phumin)으로 이동한다. 왓 푸민은 왓 루앙과 함께 난을 대표하는 왕실 사원으로 1596년에 건설돼 무려 400년이 넘은 사원이다.

왓 푸민은 난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관광 명소로 왕실사원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사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왓 푸민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기존의 사원 건축양식과는 다르게 십자형 구조로 돼 있다는 것과 내부의 불상이 하나가 아닌 네 개라는 것. 사원 입구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나카(남자), 나키(여자)라 불리는 용을 닮은 태국의 전설 속 동물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나카와 나키의 긴 몸통은 사원의 끝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데 나카와 나키의 몸 아래 난 작은 문을 통해 사원을 한 바퀴 돌면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다시 한 번 난 여행을 하기 위해 사원을 한 바퀴 돈 다음 사원으로 들어가면 신비로운 네 개짜리 불상보다도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바로 붓다의 생애와 400년 전 난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벽화다. 사실 이 벽화야 말로 왓 푸민을 유명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는 장면이라든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상상도 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것들이 모두 벽화로 기록돼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인정받고 있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야릇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벽화다. 현재 이 그림은 난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그림으로 오늘날 난 기념품의 단골 무늬로 이용되고 있다.

왓 푸민 사원 근처의 기념품 숍에서 벽화 속 남녀가 그려진 회색 티셔츠를 120바트에 구입하고 다음 목적지인 ▲반 농 부아 타이 르 템플(Ban Nong Bua Thai Lue Temple)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난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 타이 르 족들의 마을이다. 르 족의 마을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왓 푸민 사원 벽화 못잖은 벽화가 이 마을 사원인 왓 농부아(Wat Nong Bua)에도 있다는 것이다. 왓 농부아는 1862년에 만들어진 사원으로 왓 푸민의 벽화를 그린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이 곳 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왓 농부아의 벽화는 붓다의 생애를 묘사한 짜따까(Jataka)가 주 내용을 이루지만 그 그림체나 벽화에 나오는 내용이 왓 푸민의 벽화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벽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쉬움을 샀다. 왓 푸민 역시 군데군데 벽화가 훼손돼 아쉬웠는데 왓 농부아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30년 전 벽화를 복구하기 위해 문화부에서 지붕을 뜯었다가 마침 비가 오는 바람에 벽화가 다 지워졌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원 뒤편 골목에는 태국에서 유명한 타이 르 족 여성인 쿤 짠쏨(Khun Cahnsom)이 운영하는 원단과 전통 복장 가게가 있다. 타이 르 족 마을은 태국에서 가장 좋은 원단을 생산하는 마을 중 하나로 르 족 사람들은 12살 때부터 옷 짓는 방법을 배워 직접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나다.

난 박물관에서 미리 공부했던 것을 실물로 보고 난 후 굉장히 뿌듯해진 마음으로 방문한 다음 목적지는 ▲난 아트 갤러리로 왓 푸민에서 봤던 남녀 벽화를 현대적 느낌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있는 곳이다.

난 갤러리의 1층은 다른 예술가들의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있고 2층은 난 갤러리의 주인인 교수님 작품들로 전시돼있다. 이곳에서 꼭 감상해야 하는 것은 2층의 작품으로 왓 푸민의 남녀 벽화를 재해석한 세련된 느낌의 그림들이다.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벽화가 그려진 라마 5세 시절에는 남녀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 거의 없었고 게다가 그렇게 야시시한 자태는 더욱 드물었다며 연신 벽화의 희소가치를 강조했다.

난 갤러리는 태국 둘째 공주가 방문해서 더욱 유명세를 탔는데 이곳에는 둘째 공주의 낙서 같은 그림들도 멋지게 전시돼있다. 입장료는 20바트. 추천 하고 싶은 것은 난 갤러리의 커피다. 작은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난 갤러리의 카페는 조용하고 아늑해서 휴식을 취하기에 더 없이 좋다. 게다가 달콤한 태국식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다음 여행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

하루 종일 폭풍 같은 여행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어느새 붉어진 난의 오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왓 카우노이는 조용한 난의 선셋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왓 카우노이는 작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250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오거나 차를 통해 올라 올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난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시내 전경도 멋지지만 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대형 불상의 뒷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마치 미국 영화사 콜롬비아 픽쳐스의 자유의 여신상이 떠오르는 그 모습은 고요함과 은근히 깔린 붉은 노을, 손톱만한 집들과 조화를 이뤄 더욱 비현실인 광경을 만들어낸다.
 
가끔은 어떤 스토리보다도 하나의 장면이 더욱 강력하게 기억되는데 왓 카우노이의 대형 불상이 기자에겐 그랬다. 불상과 똑같은 위치에서 난을 내려다보며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고 또 만족스러웠다.

난을 떠나기 전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난 여행의 모자란 2%를 채워줄 ▲난 새벽시장(Nan morning market)은 관광지에서는 할 수 없었던 현지인들과의 교감이 가능하다. 새벽 다섯 시 졸린 눈을 부비며 꾀죄죄한 차림으로 새벽시장에 나서면 시끌벅적 하진 않아도 활기와 생동감으로 가득한 현장이 펼쳐져있다. 그
 
생기로 정신이 맑아지면 새벽시장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색색의 채소와 과일, 양념들과 생필품들은 우리나라 시장과 다를 바가 없고 흥정을 하는 모습도 친숙하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탓에 시장 곳곳에는 간단한 음식과 한 끼용 도시락이 발길을 붙잡고 고소한 기름 냄새는 마침내 지갑을 열게 한다. 카메라 렌즈를 내리고 웃어 보이면 난 사람들의 수줍은 미소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새벽시장은 탁밧을 하는 스님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시장 상인들은 준비한 탁밧 음식들을 스님에게 예를 갖춰 올리고 스님은 보답으로 그들에게 기도를 해준다.

탁밧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기자도 ‘사와디 카’ 라는 첫마디와 함께 준비한 음식을 항아리에 넣고 두 손을 합장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그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것이 벅찼다. 그들 또한 난 전통 의상을 입고 탁밧을 하는 외국인에게 호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짧았던 난 여행은 기자에게 소소한 감동의 향연이었고 순수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움으로 기억되는 여행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