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37호]2014-03-14 11:15

전주고유의 맛과 멋, 흥하고 취한다

오래된 한옥에서 빗소리 들으면 봄 정취 물씬

식도락 여행지답게 별미 한상, 지갑 술술 열려

전주는 느릿하게 두 발로 구경하는 것이 제격인 여행지다. 급하게 길 곳곳을 휘저으면 볼거리가 적고 너무 애써서 연구하는 자세로 탐방하다보면 몇 시간 못가 주저앉고 만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하늘로 곧게 펴고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신 다음 최대한 힘을 빼는 것이 전주여행의 첫 번째 준비 동작이다. 그 다음 편하고 길이 잘 든 신발로 툭툭 거리 곳곳을 차고 어슬렁거리다 보면 오래된 술처럼 그윽하고 자연스럽게 여행길에 스며드는 나와 일행을 발견할 수 있다. 3월 전주는 아직 바람은 쌀쌀하지만 한 낮 등허리에 꽂히는 햇살만은 아궁이 불 마냥 뜨끈하고 정겨워 퍽이나 기억에 남는다.

전주=김문주 기자 / 취재부 titnews@chol.com


“한옥마을 먹거리/볼거리 풍성, 재방문은 글쎄”

언제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전주를 찾는 내외국인들은 대부분 전주한옥마을에 몸을 푼다. KTX를 통해 전주역에 내린 뒤(용산역 출발 기준 약 3시간 소요) 택시를 타고 전주한옥마을에 입성하면 당일치기 관광이 시작된다. 포털사이트나 여행 블로거에 ‘전주 여행’ 혹은 ‘전주한옥마을’을 키워드로 치면 친절하게 여행 코스와 맛 집 정보까지 상세히 알려주니 편하지만 혹여 남이 썼던 공책을 받아 공부하는 느낌이니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거들의 추천을 추려보면 대부분 오목대와 이목대를 구경하고 경기전과 전동성당을 거쳐 남부 시장에서 허겁지겁 순댓국 한 그릇 먹는 것이 전주한옥마을 여행 코스로 굳어진 듯하다.

한옥마을에 입성하면 우선 한옥마을관광안내소에 들러 지도와 정보를 받아들고 태조 이성계가 왜적을 무찌른 뒤 연회를 벌였다는 오목대를 올라가보자. 안내소 맞은 편 ‘전주공예품전시관’ 옆 뒷길 산책로를 이용해 계단을 오르면 700여 채의 고즈넉한 한옥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알록달록한 벽화가 인상적이었던 전주 자만마을.
 

다시 한옥마을로 돌아와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아기자기한 길거리 조형물과 전통찻집, 음식점, 각종 선물 숍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추천할 여행지는 남부시장 2층에 자리한 청년몰. KBS ‘다큐3일’로 이름을 알린 이곳은 ‘남부시장 레알 뉴타운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청년사업가들이 입주해있다. 순수 한지를 이용한 엽서, 수공예 액세서리, 네 명이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선술집 등 일본이나 유럽의 로컬 마켓이나 벼룩시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단 예술가들의 정신이 십분 발휘된 탓에 전시해 놓은 상품들은 모두 고가라는 점은 명심하자.



전주 한옥마을의 흔한 한옥 스테이.
 

사람들은 전주한옥마을에서 크게 두 가지 재미를 좇는다. 먹거리와 한옥이 그것. 전주한옥마을에는 어림잡아 700여개에 달하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데 눈이 즐거운 것은 당연하지만 아쉬운 점이 더 많다. 사극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고택과 거무튀튀한 기와들이 과거로 흘러 들어간 듯 묘한 매력을 풍기는 것은 두 팔 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장기적인 경쟁력을 살펴보면 빨간 등이 켜진다. 더욱이 요사이에는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대부분 한옥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방 안에 욕실이 딸려 있고 TV 와 미니 냉장고까지 들어가 있다. 평균 9~10만원에 달하는 방값들은 그렇다 쳐도 한옥 구조에 따라 방 마다 수준 차이가 심하고 밖에서 보이는 외관을 제외하면 안에 구조는 현대식 집과 큰 차이가 없는 집들마저 한옥이라는 이름아래 장사질을 하고 있으니 부끄럽다.

사실 제대로 된 한옥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조금 불편해도 최대한 손이 덜 탄 옛집들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함께 방문한 일행 모두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머물겠지만 누가 또 한옥을 찾겠냐며 업자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혀를 찼다.


<벽화>

오목대를 넘어 이목대를 가는 다리에 이르면 길 건너 담장벽화가 인상적인 ‘자만마을’이 보인다. 낡고 오래된 담장을 컬러풀하게 색칠한 것이 흡사 통영의 동피랑 마을을 떠올린다. 50여 개가 넘는 주택들의 담장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걷다보면 동화책이나 아름다운 화보를 넘겨보는 듯 숨이 가빠온다.

 

<볼거리>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어전을 보우하고 있는 경기전을 비롯해 한국 천주교 순교 일번지인 전동성당, 현존하는 항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주향교, 한벽당, 남고산성, 남부시장 등 한옥마을 주변에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밀집해 있다.

 

<숙박>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굿스테이 지정 업소부터 전주한옥마을, 모텔, 호텔, 수련원 등 다양한 숙박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한옥 숙박을 희망하는 탓에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빈방을 구하는 일이 어렵다. (hanok.jeonju.go.kr)

 

<식도락>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전주는 900년대에는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500년 조선왕조를 일으킨 전주 이씨의 본거지로 두 왕조를 모신 역사의 성지다. 예부터 기름진 평야에서 질 좋은 농산물이 생산됐었고 역사적으로도 가장 질 좋은 식재료들이 먼저 도착한 배경 탓에 먹거리 문화가 잘 발달돼 있다. 언론을 통해 유명해진 피순대, 콩나물국밥을 비롯해 떡갈비, 모주, 한정식, 비빔밥, 전주 막걸리 골목 등 여행 내내 입이 심심한 순간은 단언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