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43호]2014-04-25 15:09

[창간 인터뷰 ②] 김현·조동현 부부배낭여행가 제1호

“그 모든 여행은 당신이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대한민국에서 70대 여행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떠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부 또 공부
 

 작가 혹은 칼럼니스트들은 종종 필명을 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순순히 작품으로만 독자와 만나고 평가받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

필명까지는 아니지만 기자 역시도 원고를 작성할 때마다 닉네임처럼 사용했던 것이 ‘여행 좀 다녀본 언니’였다. 30개국 가까이 여행했으니 어울린다 생각했는데 김현, 조동현 선생님을 만난 순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치기였는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4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총 165개국을 몸으로 여행하며 대한민국 부부배낭여행가 제1호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아름다운 부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이들의 철학과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짜릿한 여행기를 지면에 담았다.

글·사진=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만난 지 4개월 만에 초고속 웨딩 마치”

한 낮의 햇살이 카메라를 멘 오른쪽 어깨를 뜨끈히 지지던 오후 서울 가양동에 위치한 실버타운(그레이스 힐)을 찾았다. 우연찮게 약속을 잡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이 깨지고 다시 어렵게 잡은 스케줄, 그러니까 인터뷰 얘기가 오가고 꼭 세 번 만에 김현, 조동현 부부를 만나는 날이었다.

“반갑습니다. 들어오는 발걸음이 시원하네요.(웃음)” 그레이스 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 소파에 앉아있던 김현 선생이 몸을 일으켜 기자를 맞았다. 방송사 경력은 물론 여행가로서의 삶까지 따지고 들면 한참 선배이자 어른임에도 그의 행동에는 겸손과 배려가 묻어났다. 100도 가까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어서 와요. 오느라 수고했어요.”라고 선생 옆에 그림처럼 서있던 아내 조동현 씨가 다정히 말을 보탰다.


 


두 내외는 지난 2013년부터 이곳 그레이스 힐에서 거주하고 있다. 다양한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 청소나 생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내외가 함께 지내기 두루 편했기 때문이다. 정오를 넘긴 시각인 만큼 곧장 식사가 이어졌는데 아내인 조동현 선생이 먼 길 온 기자를 위해 이탈리아 와인 한 병을 따서 손수 대접했다. 와인 몇 잔이 천천히 돌고 기분 좋은 취기가 꽃처럼 피어났다.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순간 70대 노부부는 계속해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서로를 지켜봤다. 기억이 힘들어 남편이 얘기를 멈추면 옆에 있던 아내가 금세 얘기를 이어갔고 아내가 잠시 숨을 돌리면 남편이 주제를 전환하는 식이었다.


- 인터뷰 많이 하셨잖아요. 다들 좋았던 여행지나 여행을 떠나시게 된 배경부터 묻더라고요. 저는 어떻게 만나셨는지 그리고 두 분 허니문의 추억이 먼저 궁금합니다.

▲김현(이하 김) : 46년 전에 서울에서 농구장에 갔었어요. 거기서 아는 지인과 함께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가 옛날 여자들하고 다르게 개구지고 신식이었어요.

그때 내가 서른 살이고 아내가 스물일곱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노총각 노처녀 취급을 받았거든. 아내는 내 나이를 듣고는 내가 기혼자인줄 알았는지 내숭 없이 까불더라고. 그 모습에 반했으니 인연인 것 같아요. 이후 매일 매일 서로 얼굴을 보다가 4개월 만에 곧바로 결혼을 했지요. 우리는 서로가 구제해 줬다고 말해요.

▲조동현(이하 조) : 허니문은 제주도로 다녀왔는데 그 시절 제주도는 해외여행하고 똑같은 말이었어요. 첫 시작부터 특별했던 거지. 연애 기간은 남들보다 짧았지만 서로 맘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가끔 아버지(아내는 남편을 아버지라고 지칭했다)가 자기 얼굴이 잘 생겨서 내가 자기랑 결혼한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그건 아녜요. (웃음)

 

“라디오 PD와 영어교사 배낭을 메고 세계로 떠나다”

부부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남편은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와 KBS 및 TBC에서 라디오 PD로 오랜 기간 활동했고 아내는 서울대 사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서울여상 등에서 교사로 33년간 근무했다.

아내가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주로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다녔는데 같은 곳을 70번씩이나 방문할 만큼 여행은 또 다른 삶이자 가치였다고 했다. 해외여행완전자유화가 실시된 1989년부터는 아예 배낭 하나 둘러메고 본격적으로 지구 곳곳을 탐방하는 여행자의 삶을 살았다. 이들 부부의 삶은 많은 언론 매체와 방송을 통해 알려졌는데 지난 1995년부터 12년간 출연한 KBS TV<세상은 넓다>는 그 중 가장 인연이 깊다.

 

- 여행시장이 태동하기 이전부터 배낭여행을 다니셨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 : 방송국을 다닐 때부터 은퇴 후 제2의 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가로 살겠다는 것이었죠. 남들보다 빨리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반대할 줄 알았던 아내가 동참하면서 교직에서 물러나 합류했고 그 결과 40대 후반부터 70세가 넘은 지금까지 배낭여행가로 살고 있어요.

- 비싸고 좋은 여행도 많은데 왜 굳이 힘든 배낭여행을 택하셨나요?

▲김 :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도 이용해 봤는데 성격에 안 맞더라고. 배낭여행은 복덩어리 같다는 생각을 해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선 경비가 저렴하고 모든 일정과 방문지 등을 직접 설계하니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죠.

부부가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늘어나 금슬도 좋아지고요. 이 곳(그레이스 힐)에서 우리 내외가 그나마 젊은 편인데 다들 사이가 너무 좋다고 해요. 오래전부터 함께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하던 것이 습관처럼 몸에 남아서 그런 것 같아요.

 ▲조 : 가끔 오해도 받았죠. 우리가 돈이 아주 많은 부자라더라 하는 거. 165개국을 여행했으니 그럴 만도 해요. 그런데 사실 우린 정말 가난하게 여행했어요. 2성급 모텔도 마다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뻑뻑한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어요.

택시비 아끼려고 10년 만에 부부싸움도 하고. (웃음) 매번 우리 돈으로 여행을 갔던 것은 아녜요. 경험과 노력을 알아봐준 관광청이나 업체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고 팀을 꾸려서 인솔자나 가이드 자격으로 떠나기도 했어요. 방법을 열심히 찾았던 거죠.

신기한 것은 가난하게 여행했지만 추억까지 가난하지는 않다는 거예요. 돌이켜 보면 재미난 일이 너무 많아요. 한 번은 이탈리아 지방을 여행했는데 정말 허름한 모텔에서 묵었거든요. 근데 모텔 바로 앞에 장엄한 절벽과 바다가 펼쳐져 있는 거예요. 그 뷰를 과연 어디서 볼 수 있었겠어요.

 

-여행하면서 싸우지 않으셨어요? 주변 젊은 커플들도 허니문 가면 한 번씩 부딪치던데요.

▲김 : 우리 부부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큰 다툼은 없었어요. 오히려 서로 여행하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졌지. 라디오 방송은 1분 1초라도 어긋나면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전체적인 틀을 잡고 기획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또 PD로 살면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고. 내가 전체를 세우고 수집한 자료를 건네면 아내가 꼼꼼하게 자료를 분류 및 정리해서 일정과 비용을 짜는 식이예요. 45년 동안 변함없이 아내가 그 일을 해주고 있어요. 덧붙이면 배낭 싸는데도 아내는 일등이죠. 난 그냥 짐꾼 같아. (일동 웃음)

 

-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떠세요?

▲조 : 부부 10계명이라고 우리 부부가 만족스러운 여행을 위해 늘 강조하는 것이 있어요. 이를 테면 ‘10일 여행을 위해서 100일을 준비하라’, ‘한 달에 10만원씩 여행비용을 모아라’ 혹은 ‘부부 사이의 대화도 훈련이다’ 등이죠.

나는 많이 준비하고 미리 공부한 여행이 최적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봐요. 예전에 시험문제 만들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지금도 일정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순간 옆에서 남편이 아내가 만든 여행 자료가 각 국가마다 노트 한 권 분량을 넘을 정도로 알차고 꼼꼼하다고 자랑했다.)

 

-나이나 경제적인 문제 등 여행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김/조 : 여행은 매력적이죠. 이런저런 사정으로 피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해요. 보니까 여행에서 돈만큼 중요한 게 건강이더라고. 우리만 해도 작년하고 올해가 다르니까. 체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돈과 시간이 있어도 갈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요.

영어 못해도 상관없고 길 몰라도 상관없지. 우리 부부는 그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그 여행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났어요. 기자님도 마찬가지고. 매일 아침 나는 평화롭게 살자, 평화로운 하루를 열자라고 기도해요. 여행은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그런 평화와 행복을 주는 좋은 친구였던 것 같네요. (웃음)

 

부부는 그 간 여행지에서 모은 자료와 각종 스크랩북 기념품 등을 취합해 박물관과 학교, 도서관, 노인 복지원 등에 기증하고 있다. 또 다양한 현지 경험을 살려 <여보 우리도 배낭여행 떠나요>, <여보 우리 함께 떠나요>, <김현, 조동현 부부의 세계 도시 기행>,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 > 등 여행 관련 포함 총 10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1999년부터 이끌고 있는 <2Hyuns Travel Club> 식구들과도 꾸준히 여행을 다니며 올 여름 발칸 여행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이가 아닌 행동력과 삶에 대한 열정에서 이들 부부를 노년이 아니라 청년으로 불러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터뷰 말미 조심스레 여쭈었다. ‘마지막 여행은 언제로 생각하고 계세요?’라고. 김현 선생은 갑작스럽다는 듯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그런 남편을 바라보더니 슬며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내년이면 아버지가 희수(喜壽)시니까 가족들과 다 함께 미국 여행을 갔으면 해요. 그 이후는 사실 잘 모르겠지”라고.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기고 서류를 가방에 밀어 넣으면서 나는 이들 부부의 여행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며 계속돼야 한다고 속으로 조용히 되새겼다.


 


[김현] (1939년 1월25일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1963~1994년 KBS 및 TBC PD 역임

▲한국가톨릭 언론인회 회장, 가톨릭대 강사, 여의도 클럽 상임 부회장, 한국여행인클럽 회장, 한국관광인클럽 공동 대표, 한국관광공사 주최 올해를 빛낸 관광인 선정 심사위원장.

 

[조동현] (1942년 9월4일 충남 출생)

▲서울대 사대 영어과 졸업

▲서울여상 등에서 교사로 33년 근무

▲2Hyuns Travel Club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