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81호]2015-03-06 13:11

인도 (上) 타지마할 빠진 인도여행이어도 좋아!




과거에는 힌두교 현재는 무슬림
그러나 불교유적지로 유명한 보팔의 독특한 매력
보팔을 대표하는 불교성지순례 ‘산치’
경이로운 고대 벽화유적지 ‘빔베트카’
 
 
글 싣는 순서
●인도<上> 과거로의 여행, 보팔·빔베트카
인도<下> 숨 막힐 듯한 인도 건축기행
인도<下> 델리 그리고 인도여행



광대한 영토의 나라, 쉽게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 인도는 그래서 신비롭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인도와 비교하면 인도의 큰 ‘주(州)’만한 크기의 나라에서 온 기자는 지도 한 가득 넓게 펼쳐진 인도의 크기에 조금 많이 놀랐더랬다.

‘이렇게 큰 나라에서 내가 가는 곳은 고작 여기뿐이구나.’ 여행 시작도 전에 아쉬움 짙은 한숨이 지도 위로 떨어졌지만 이내 기자의 첫 목적지가 익히 알고 있던 인도의 유명관광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다.


기자가 생애 첫 인도 방문에서 가장 먼저 여행할 곳은 인도의 수도 델리(DELHI)도 아니고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 북부의 우타르 프라데시(UTTRA PRADESH) 주도 아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인도의 딱 중심에 위치한 인도 중부의 마드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의 주도 보팔(Bhopal)이었다.


이름부터 발음까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인도. 출발 전부터 주변 지인들로부터 걱정 섞인 잔소리를 꽤나 들었던 터라 미리부터 겁을 먹고 떠났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기자이지만 진짜 인도를 만나기 전까지 쓸데없는 생각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고백한다.


매순간이 신비와 경이로움, 혼란과 소음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인도 문화탐방 출장의 기억을 지면에 쏟아내 본다.


취재협조 및 문의=인도정부관광청(www.incredibleindia.org)
인도=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우리가 보팔에 온 이유는 산치(Sanchi) 때문”


인도의 국적기 에어인디아의 인천-홍콩-델리노선을 이용해 약 10시간 만에 인도의 수도 델리 땅을 밟았다. 1월 말 델리의 밤 기온은 쌀쌀하고 습했다. 안개가 가득 낀 인디라간디국제공항(Indira Gandhi International Airport, 이하 델리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빠져나온 시각은 밤 11시 정도.


기자 일행은 델리 땅을 밟자마자 30분 거리의 호텔에서 고작해야 1시간여를 잔 후 보팔로 향하는 국내선을 타기 위해 새벽 4시쯤 다시 델리공항을 찾았다.


델리에서 보팔로 향하는 에어인디아 국내선이 새벽 6시와 저녁 늦게 한 편이 전부이기 때문. 마치 잠 못 자는 극기 훈련과 같았던 델리에서의 반나절이 지나고 이른 아침, 드디어 인도 출장의 첫 목적지인 보팔에 도착했다.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시 주의 주도인 보팔은 인구 200만 명 규모의 상업도시(참고로 인도의 총 인구 수는 약 12억 5천 명에 달한다)로 인구의 40%가 무슬림, 56%가 힌두교인 곳이다. ‘드넓은 인도 안에 이름난 관광명소가 얼마나 많은데 우릴 굳이 보팔로 초대한 이유가 뭘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보팔에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지는 불탑이자 아쇼카(Asoka) 왕이 만든 대표적인 불탑인 산치(Sanchi) 대스투파(또는 대탑)이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들렸다.


사실 인도는 불교 창시자인 붓다가 열반에 이른 곳으로 붓다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는 불교성지다. 국교가 힌두교로 변경되기 전인 13세기까지 불교는 고대인도 전역에서 번성했었다. 그 중에서도 보팔의 산치유적지는 포교에 힘썼던 인도 마가다국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이었던 아쇼카 왕에 의해 조성됐다.


산치유적지는 3개의 큰 스투파와 47개의 작은 스투파들로 이뤄져 있다. 산치에서 가장 큰 제1 대스투파의 사방에는 스투파의 입구인 ‘토라나(torana)’가 서있는데 이 중 남쪽 토라나가 메인이라고 한다. 각각의 토라나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고 그 조각들은 붓다의 가르침이나 아쇼카 왕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 등을 나타내고 있다.


산치는 붓다와 직접 연관이 있는 8대 불교성지는 아니지만 불교 장려활동을 펼쳤던 아쇼카 왕과 그의 아내 고향이었던 ‘비디샤’ 상인들의 기부금을 통해 만들어진 곳으로 불교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산치유적지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산치유적지에 상주하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조각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부터 현재의 산치유적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장대한 역사를 깊이 있게 알려준다.


참고로 보팔공항에서 산치유적지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교통체증이 있을 땐 한 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산치에 가려져 있던 보팔시티의 진면목”


이제야 말하건대, 기자는 보팔에 오기 전까지 보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웹 서치를 통해 알아낸 것은 고작해야 과거 보팔에서 큰 공장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사실 뿐. 한국에서 보팔의 인지도는 미미한 수준. 실제로 보팔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산치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 보팔을 잠깐 들르는 정도다. 하지만 보팔은 마드야 프라데시 주의 주도로 인도르(Indore), 괄리오르(Gwalior), 자발푸르(Jabalpur)와 함께 마드야 프라데시를 대표하는 도시다.


고생을 하고 보팔까지 왔는데 산치만 달랑 보고 떠나기 아쉬워 나선 보팔시내관광. 생각보다 보팔은 넓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7개의 인공호수를 갖고 있어 호수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보팔은 과거에는 힌두교가, 현재는 무슬림이 중심인 도시이자 불교 유적지로 유명한 도시다. 인도를 대표하는 3종교의 영향을 모두 받은 독특한 도시 보팔. 현재는 무슬림이 중심이기에 모스크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팔에는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꼽히는 △타지 울 마스지드(Taj-ul-Masajid)가 있다.


탁 트인 광장 사방에는 120개의 방이 마련돼 있으며 이 곳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힌디어, 영어, 터키어, 아랍어, 파르시어 등 5개 언어를 가르치는 교실로 사용되고 있다. 기부자들에 의해 공동학교로 운영되고 있으며 각각의 교실 문 위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3평 남짓한 작은 교실 안에는 교사 한 명과 아이들 대여섯 명이 학문에 집중하고 있었고 모스크 중앙 기도실에는 무슬림이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개방된 모스크 일부에서도 아이들과 선생님이 모여 있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보팔 시내에는 델리에 있는 자마(Jama) 마스지드(Masjid, 이슬람교 사원)를 본 따 만든 △모띠 마스지드(Moti Masjid)도 있다. 모띠 마스지드는 아프간과 무슬림, 무굴(제국)스타일이 혼합된 이슬람 사원으로 타지 울 마스지드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건축양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슬림 도시답게 곳곳에 건축된 모스크(아랍어로 마스지드)를 구경하다 보면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촉 바자(chowk bazar)로 어느새 빨려 들어간다. 보팔의 번화가이자 거대한 시장인 촉 바자는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sari)를 비롯해 각종 길거리 음식과 생필품, 잡화 등이 판매되고 있다. 좁은 골목 안에 오토바이와 사람, 좌판, 노점이 한데 엉켜 대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오토바이 경적소리와 끊임없이 모여드는 사람들에 머리가 띵해질 쯤 ‘호수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가진 보팔의 진면목을 체험하러 △어퍼 레이크(upper lake), 즉 상류 강으로 가본다. 인공호수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으며 강 위로는 오리 배 몇 척과 뱃사공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물빛이 맑고 투명하다거나 경관이 눈부시게 아름답진 않지만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보팔을 멀리서 조망하고 싶다면 어퍼 레이크에서의 뱃놀이도 추천할 만하겠다.


 
 

“진짜 원시인이 살았던 곳, 빔베트카 바위 유적”


굳이 따지자면 보팔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시가지에 유명 모스크와 촉바자 등의 관광지가 있다면 신시가지는 주로 보팔의 부자들이 거주하는 동네가 되겠다.


주요 시내관광이 이뤄진 보팔 올드시티에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빔베트카(Bhimbetka)까지는 약 한 시간 반.


지난 200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빔베트카는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청동기 시대까지의 벽화가 기록된 바위 유적지로 구석기 시대부터 원시인들의 은신처로 이용돼 왔다. 빔베트카 유적지가 신비로운 이유는 거대한 천연 동굴과 바위 은신처의 규모가 압도적이기도 하지만 바위 곳곳에 남아있는 고대벽화들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벽화인 기초적인 동물 그림부터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시작하던 때의 꽃 그림, 자신들만의 문화를 기록한 춤추는 사람을 그린 그림, 부족 간의 전쟁을 기록한 그림 등 몇 천 년에 걸쳐 그려진 벽화들을 한 시간여 만에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짜릿하다.


빔베트카에서 가장 거대한 벽화는 총 450여 개의 그림이 그려진 벽화로 동물 그림만 약 252개에 동물 종류만 16종류다. 벽화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대가 달라지는데 12,000년 전 동물을 사냥하던 때, 4,500년 전 도구를 이용해 농업을 하던 때, 2,500년 전 칼과 무기를 이용한 전쟁 벽화 등이 시대 별로 기록됐다.


벽화를 제외하고도 빔베트카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바위유적지가 많다. 그 중에서도 언뜻 보면 코브라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큰 버섯 같기도 한 바위유적지는 흡사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크기와 모양이 위엄차다.


고대불교유적지에서 현대의 보팔시내를 거쳐 선사시대 유적지까지, 마드야 프라데시로 떠난 뒤죽박죽 과거 여행은 혼란스럽기보다 앞으로의 인도여행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빔베트카의 입장료는 현지인은 50루피, 외국인은 100루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