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82호]2015-03-16 07:42

[현지취재] 인도 (中)
 
 
글 싣는 순서
인도<上> 과거로의 여행, 보팔·빔베트카
인도<中> 숨 막힐 듯한 인도 건축기행
인도<下> 델리 그리고 인도여행
 

 
인도의 건축물에 빠져들다
 
 
단순한 색감, 복잡한 구조 인도라서 가능한 건축기행
 
 
인도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카레와 갠지스 강, 요가, 힌두교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인 타지마할. 수많은 여행자들이 인도를 여행목적지로 택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꼽는 이유는 아마 타지마할(Taj Mahal)을 실제로 보기 위함일 것이다.

건축물은 존재만으로 그 시대의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준다. 문화와 생활상, 당시의 발전 속도, 왕의 힘과 건축물에 얽힌 역사 등. 알고 보면 대부분의 관광은 그 곳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탐방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 유럽의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을 반영한 교회 등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현대에 들어 가장 대중적인 관광코스로 활약하고 있다. 인도 역시 여행을 구성하는 핵심 일정은 타지마할과 같은 인도의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이다. 몇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주변국들과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은 탓에 인도는 유례없이 독특하면서도 몽환적인 건축양식을 구축해 왔다.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아그라 요새나 과학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진 오르차의 제항기르 마할 등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인도의 건축물들을 일일이 나열해보자면 끝이 없다.

인도 중북부 오르차에서 괄리오르로, 괄리오르에서 아그라로 이어지는 인도 중부 건축기행. 원래도 감탄사에 인색하지 않은 기자이지만 인도의 건축물들을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매번 격하게 탄성을 내지르는 바람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살짝 목이 상할 정도였다.

뭐하나 빼놓지 않고 싶을 만큼 전부 대단했지만 그 중에서도 기자가 가장 크게 탄성을 내질렀던 건축물 네 곳을 지면에 꺼내보겠다.

취재협조 및 문의=인도정부관광청(www.incredibleindia.org)
인도=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첫 번째 건축물> 존재만으로도 이미 초호화, 제항기르 마할(Jahangir Mahal)
 
오르차(Orcha)는 힌디어로 ‘숨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작은 마을이다. 괄리오르역에서 차로 약 세 시간 정도 소요되는 오르차에는 무슬림과 힌두식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룬 제항기르 마할을 비롯한 라자 마할(Raja Mahal), 현재는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 씨즈 마할(Sheesh Mahal) 등 총 27개 역사 관광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제항기르 마할.

제항기르 마할은 제항기르 왕이 오르차에 방문한 것을 기념해서 지은 궁전으로 제항기르는 타지마할 건축을 지시한 샤자한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제항기르 마할은 16세기에서 17세기에 축조됐는데 성 내부를 살펴보면 호화롭기 그지없다. 성 중앙에는 야외 수영장과 자쿠지가 설치돼 있고 성 밖에는 마구간과 낙타 집이 마련돼 있다. 거대한 마구간의 사이즈로 보아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지 어이없는 사실은 실제로 제항기르가 이 성에 머문 것은 단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 대부분은 텅 빈 채 유지돼 왔단다. 이 사실만으로도 제항기르 마할은 ‘초호화 성’이라고 불릴만하다.

성은 꽤나 정교하고 복잡하다. 일층과 이층, 삼층으로 가파르게 이어진 계단과 좁은 복도는 마치 미로를 연상시키고 각 층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방 수십 개가 공허하게 비어있다. 성은 커다란 정사각형 모양으로 폐쇄적인 형태다. 하지만 성 꼭대기에 올라가 사각형의 각 모서리에서 성 안을 내려다보면 나머지 3면의 성이 한 눈에 들어와 그렇게 장관일 수 없다. 성 밖으로 난 창을 통해서는 낮게 깔린 오르차 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
 


<두 번째 건축물> 사색하기 좋은 곳, 괄리오르 포트(Gwalior Fort)

 
괄리오르 포트를 설명하기에 앞서 괄리오르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괄리오르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주(첫번째는 라자스탄 주), 중부 마드야 프라데시 주에 속한 도시로 보팔, 인도르, 자발푸르 다음으로 큰 도시다. 힌두교 신자들이 70%를 차지하고 나머지 30%가 무슬림, 시키즘(sikhism, 시크교), 불교, 천주교 등으로 구성된 힌두교 중심의 도시로 괄리오르 대표 건축물인 괄리오르 포트 역시 힌두양식으로 축조됐다.

괄리오르 요새 안에는 이곳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만싱 궁전(maan singh palace)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살았던 작은 성들을 볼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만싱 왕과 그의 궁전에 대해 설명하자면 일단 그에게는 무려 아홉 명의 아내가 있었다는 것과 궁전 안에는 아내들을 위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는 것을 먼저 알려주고 싶다. 만싱 궁전은 1508년에 만들어졌는데 1500년대의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학적이다. 일례로 지하에 마련된 대욕탕은 성 옆의 강물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했으며 수십 개의 창과 거울을 이용해 내부를 환하게 밝히도록 했다.

아내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만싱 궁전에는 아홉 명의 부인 중 여덟 명이 함께 지냈는데 궁전에만 갇혀 지내는 아내들을 위해 음악의 방부터 그네가 설치된 지하놀이터까지 만싱의 아내사랑이 궁전 곳곳에 묻어 있다. 특히 지하 놀이터에는 다른 건물에 따로 사는 아홉 번째 부인과 연락할 수 있는 연락시설이 있는데 굳이 설명해보자면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좁다란 구멍을 통해 말을 전하는 형태다. 더운 여름에만 이용하는 여름용 침실도 있다. 바람이 부는 위치에 방을 만들고 창을 뚫어 항상 바람이 통하게 만들었다.
 

만싱 궁전은 성뿐만 아니라 사원으로써의 기능도 겸하도록 힌두사원을 갖추고 있는데 인도식 예배 행동인 나마스테(namaste) 손 모양을 표현한 문이나 힌두를 상징하는 꽃무늬 벽장식 등 성 곳곳에 힌두식 건축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괄리오르 포트는 인도의 다른 요새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괄리오르 전경이 끝내준다.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려대던 경적소리가 메아리처럼 흩어져 들리고 점점이 낮게 깔린 집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워 보인다.
 


<세번째 건축물> “원 달러 마담!”, 아그라 포트(Agra Fort)

 
괄리오르에서 아그라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도로에 대 혼란이 펼쳐진다. 차선이 불분명한 도로 위에는 말, 소, 당나귀, 개, 트럭, 차, 리어카, 사람이 모두 한데 섞여 각자 제 갈길을 가고 있다. 아그라는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는 도시다. 이전에 방문했던 보팔과는 달리 전 세계 관광객들이 운집하는 곳으로 그만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꾼이나 원달러 키즈들도 많다.

아그라 관광 전 기자는 현지 가이드로부터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믿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란 듯이 사기를 당할 뻔 했다.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앞서 가는 현지가이드를 가리키며 ‘나는 저 가이드의 친구다. 여기서 관광 가이드 봉사를 하고 있다. 내가 도와주겠다’며 자꾸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따라 붙는 통에 얼떨결에 그를 달고 다녔는데 갑자기 현지 가이드가 기자를 황급히 끌고 가더니 ‘저 사람 누구냐’고 되묻는 게 아닌가.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현지 가이드 옆에 꼭 붙어 도착한 아그라 포트는 그야말로 ‘웅장’했다. 붉은색 사암으로 거대하게 지어진 아그라 포트는 더 어떤 말도 필요 없이 정말 크고 장대했다. 아그라 포트는 네 개의 문을 지나야 진짜 내부를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입장하는 성 남문인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hing Gate) 앞에는 깊은 수로가 있다. 과거에는 이 수로 안에 악어와 뱀을 풀어 적들이 쉽게 건너오지 못하게 했단다. 아마르 싱 게이트를 지나 두 번째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곡선으로 크게 휘어져 있는데 이는 사람이나 동물이 직선으로 달려와 문을 가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그라 포트에 입장해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오르차에서도 있었던 제항기르 왕을 위한 궁전. 제항기르 왕의 아버지였던 악바르 황제가 어렵게 얻은 아들을 위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아그라 포트의 제항기르 궁전은 힌두와 아프가니스탄의 양식이 혼합돼 여태껏 보았던 궁전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졌다.

거대한 아그라 포트 안에는 제항기르 궁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등이 마련돼 있다. 그중에서도 악바르 황제에 의해 처음 지어지고 제항기르, 샤자한까지 후대에 이어 계속 증축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아그라 성 꼭대기에 올라가면 타지마할 감상 포인트인 8각형의 거대한 탑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가 있다. 샤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돼 살았던 곳으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한 샤자한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의 배경이기도 하다.
 


<네 번째 건축물> 인도 건축기행의 하이라이트, 타지마할(Taj Mahal)

 
타지마할에 대해 무엇을 더 설명해야 할까. 아그라 포트보다 딱 두 배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타지마할에 모여 있었다. 해질녘에 도착한 타지마할은 시끌시끌한 관광객 중심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으로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자한이 죽은 아내를 애도하기 위해 22년 간 건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다”는 스토리는 누구나가 다 아는 전설. 크고 웅장한데다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이 순백색의 무덤은 이제 완벽한 관광지다.

동화 같은 타지마할 안에는 똑같은 포즈를 취한 외국인관광객, 사진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사진가들, 기상천외한 포즈의 개인 사진, 단체 사진, 커플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로 정신없이 북적인다. 타지마할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셔터 음은 타지마할 내부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타지마할 관광이 힘들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관광객들과 사진호객꾼 사이에서도 타지마할은 세상에서 가장 고고한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타지마할 내부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그냥 무덤이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샤자한의 아내이자 왕비였던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한 빈 관이 있을 뿐이다.
아름답지만 왠지 쓸쓸하고 묘한 기운이 돌았던 타지마할.

무굴양식의 정원과 순백색의 이슬람 건축물, 중앙에 수직으로 쭉 뻗은 수로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초대한 유명 건축가들의 솜씨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외부와 터키, 미얀마, 티베트 등지에서 수입한 각종 보석들로 꾸며진 내부는 멀리서 봐도 아찔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경탄하게 된다. 묘하디 묘했던 타지마할을 어떻게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