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88호]2015-04-24 14:32

[창간기획-SWOT분석] 약점(인재이탈)
신입사원 10명 중 7명 “이직할래!”
이직이유 1위 기대업무와의 괴리감
업계 체계적 인재관리 시스템 필요
 
 
여행업계의 3,4월은 비수기 시즌으로 겨울보다 냉랭하다. 첩첩산중이라고 보릿고개 넘기도 힘든데 이탈 직원 단속에도 불을 켜야 한다. 새로운 둥지로 이동을 준비하는 철새들의 날갯짓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때문에 3,4월은 여행업계 종사자라면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다. 철새 무리에 속하지 않더라도 비상(飛上)하려는 동료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회의감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잠식한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보니 ‘회사와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할 순 없는 게 직장인들의 현주소. 문제는 이직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의 연차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1년차 이하 신입사원 335명을 대상으로 한 이직 관련 설문조사의 결과는 놀랍다. 10명 중 7명(72.8%) 이상이 이직을 고민 중이며 이중 84.4%는 실제 이직을 준비 중이라고 응답했다. 인재이탈은 여행업계의 고민만은 아닌 셈이다. 이는 곧 여행업계에 갓 입문한 신입사원들의 ‘끈기’, ‘애사심’ 부족 등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업계는 인재이탈의 화살을 이직자에게만 돌리려 하지 말고 직접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나서야 한다.
여행정보신문 창간 18주년을 맞아 심층기획으로 여행업계 내 신입사원들의 퇴사 사례를 소개한다.
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우리는 진짜 ‘파랑새증후군’일까”
자신의 현재 일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장래의 막연한 행복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파랑새증후군’이라고 한다. 여행업계에서는 잦은 이직을 일삼는 이들을 ‘파랑새증후군’보다는 ‘철새’로 표현한다.
A여행사 간부는 “요즘 애들은 끈기도 절실함도 없어. 하다가 안 맞는다 싶으면 그냥 나가. 맞추려는 노력은 하지를 않아요. 자기 입맛에 딱 맞는 회사가 어떻게 있어. 자기가 회사에 맞춰야지. 고용주가 ‘갑’이 아니라 ‘을’이야, 을. 야근은 하기 싫고 월급은 많이 받고 싶고. 그게 말이 돼? 속된 말로 회사는 뭐 땅 파면 돈이 나오나”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기도 했다.

현재 직장보다 더 나은 직장을 찾으려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한 간부의 이야기처럼 좀 더 많은 연봉과 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2~3년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들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입사 1~2년밖에 되지 않은 조기 퇴사자(?)들의 퇴사 이유가 단순히 회사와 맞지 않아서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회사가 아닌 업무가 맞지 않아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사람인이 1년차 이하 신입사원 3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이직을 고민하는 원인 1위는 ‘업무 불만족(49.6%, 복수응답)’이었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취업 문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그들이지만 입사했더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업무가 너무도 달랐다는 얘기다. 이는 여행사 신입사원들에게도 해당된다.
입사 전 예상했던 업무와의 괴리로 퇴사하는 직원이 늘면서 일부 여행사는 근본적 해결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 일환이 바로 ‘인턴제 도입’이다.

하나투어 홍보팀 조일상 과장은 “입사 초기에 포기하는 신입사원이 많다. 이들의 입사 포기 이유는 대게 업무 기대와의 괴리감이다. 희망 업무 부서로 배정 받지 못해서 그만 두거나 자신이 생각했던 업무와는 달라서 퇴사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자사는 지난해부터 공채를 1년에 1회로 횟수를 줄이고 인턴제도를 도입했다. 자사에서 인턴 경력을 쌓으면 공채 지원 시 2차 면접을 볼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인턴들은 실제 업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여행사에서 하는 업무에 대한 체감도가 높다. 때문에 지난해 입사한 직원들은 입사 포기가 전전년보다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여행사 입사 2년차 사원
“입사 동기 절반가량이 회사를 관뒀어요. 여행업계로는 발도 안 붙이겠다는 동기들이 다수였죠. 공무원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동기도 있어요. 힘든 일 없는 직장인이 어디 있겠어요. 그만둔 동기나 여전히 다니고 있는 저나 흔히들 말하는 ‘끈기’나 ‘애사심’은 비슷해요. 솔직히 한편으론 동기들이 멋있죠. 결단력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마음속으론 사표를 수십 번도 더 썼어요. 저도 퇴사한다면 여행업계로는 다시 오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전공을 살릴 걸 후회해요. 여행사업무가 뭔지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이상과 현실이 너무도 다른 직종이 여행업인 것 같아요.”
 

“나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을 겪고 있다”
여행사 직원은 감정노동자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입사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감정노동자는 직무의 40% 이상을 자신의 감정은 감추고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2,500만 명 중 약 552만 명이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 중 38%는 중증 우울증을 겪고 있고 근로자 80%는 인격 무시발언, 욕설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직원들을 보호해줄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다.
많은 감정노동업체들이 직원 보호를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여행업계는 여전히 뒷짐 지고 있는 모양새다.
 

△커피전문점인 ‘엔젤리너스’는 고객들에 반말, 무시, 폭언을 당하는 직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매월 첫 번째 수요일 ‘따뜻한 말 한마디 - 내 이름을 불러줘’ 이벤트를 진행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주문을 하는 고객에게 음료를 최대 50%까지 할인해 주는 것. ‘손님은 왕이다’라는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Give and Take’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직원도 손님과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유통업체인 ‘홈플러스’ 또한 점포 전 직원 대상 ‘직원과 고객의 행복을 위한 감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직원들은 감정관리 전문 강사와 서비스 리더에게 업무 스트레스 관리를 받고 화를 다스리는 ‘마인드컨트롤’을 배운다. 회사는 문제 시 되는 고객에 대한 응대 가이드라인 매뉴얼을 업데이트함으로써 직원들이 ‘진상고객’ 응대로 겪는 불편함을 최소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누가 이유 없이 맞는 돌에 격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취재차 만났던 여행사 입사 2년차 사원들의 공통된 업무 피로감은 ‘감정노동’으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이었다. 특히 ‘직원보호는 뒷전’인 사측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여행사 입사 2년차 퇴사를 앞둔 직원
“뉴스에 나오는 텔레마케터들의 고충을 제가 고스란히 겪을 줄이야. 입에 담기에도 불쾌한 욕설과 성희롱 발언, 무작정 화부터 내고 우기고 보는 ‘진상’고객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어느 날은 통화를 받고 있는 제 손이 너무 떨고 있는 게 느껴져서 더 무섭고 슬프더라고요. 원래 전 잘 웃고 긍정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았는데 입사하고 나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싫어’, ‘안 해’ 등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해있더라고요. 언젠가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을 겪을까봐 겁나요. 그런데 회사에선 직원들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하나도 없어요. 진상고객들 응대 메뉴얼도 없고 그냥 고객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죠. 회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방안 마련은 하지 않아요. 남들도 다 했는데 왜 너만 유별나게구냐는 식이에요. 언제까지고 손님은 왕이고 우리는 봉인거죠? 블랙컨슈머를 양산하는 게 여행사라는 말, 공감해요.”
 

*스마일마스크증후군 :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절망감으로 우는 사람이 가지는 증후군. 의학적 용어로는 가면성 우울증으로 불리며 식욕이 감퇴하거나 매사에 재미가 없고 의욕이 떨어지며 피로감, 불면증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내가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
 
 
Case 1. 저는 ●●여행사 짱가입니다
여행사 입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A씨.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직원도 많지 않다. 같은 시기 다른 업종으로 취직한 친구들은 이미 밑으로 후배 여럿을 거느리고 있지만 A씨는 2년째 막내다. 그는 자신은 “●●여행사 짱가”라고 표현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야만 하는 존재라고. 커피 심부름은 심부름 축에도 끼지 않는다고. 주어진 업무는 분명 여행상담인데 회사 내 비품이 떨어지면 직접 사서 채워놓고 회사 회계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Case 2. 저도 배울 것 많은 사원입니다
또 다른 여행사 입사 2년차 B씨. B씨는 나름 규모가 있는 여행사에 취직해 후배 양성에 한창이다. 자신 역시 업무를 배워야 하는 풋내기 사원인데 후배를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회사 내 3~5년차 상사가 적다보니 B씨가 속한 팀에는 10년차 과장과 2년차 B씨, 그리고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 3명이다. 이제 입사 2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막내를 가르쳐야 하는 위치로 승급 아닌 승급이 돼 버린 상황이다.
 
Case 3. 경력 3년 채우면 이직합니다
회사가 크든 작든 배우는 업무는 비슷하기 때문에 입사 시에는 회사의 규모를 따지지 않았던 C씨. 그러나 입사 후 알게 된 회사 연봉에 적잖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 여행업계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경력이 바로 3년에서 5년 미만이다. C씨는 1년 후면 3년차 타이틀을 얻는다. 이에 현재 회사보다 더 좋은 복리후생과 급여를 제공하는 규모가 큰 여행사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Case 4. 무조건 ‘YES’? 장그래 아닙니다
강압적인 조직문화가 싫어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D씨. 텃새가 심한 상사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업무가 끝나 먼저 퇴근하려고 하면 눈치를 주는 탓에 5일 근무 중 3일 이상이 야근이고 2일은 회식이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D씨는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우리 땐 안 그랬는데’라는 말이다. 시대도 사람도 변하는데 그 상사만 안 변한다. 오기로라도 버텨야지 했는데 이제는 한계”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D씨는 틈틈이 구직사이트를 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