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01호]2015-08-06 15:39

현지취재 - 호주(上) 멜버른 시티
 
글 싣는 순서
●호주<上> 멜버른 시티
호주<中> 광대한 자연
호주<下> 클래식 호주

 
 호주에서 가장 이국적인 곳, 멜버른 
현대적이면서도 유럽감성 풍부
어두운 골목 뒤 덮은 스트릿 아트
 
 
6월의 멜버른은 춥고 차갑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캐세이패시픽항공을 타고 홍콩을 거쳐 멜버른까지 장장 12시간을 비행했다. 그래, 멜버른의 첫인상은 ‘춥다’였다. 채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도착한 탓도 있지만 늦가을 멜버른의 무르익은 추위는 여행 시작 전부터 사기를 떨어트리기 충분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주차장에서 새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졸린 눈에 흰 입김을 뿜어내며 ‘얼른 호텔이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픽업차량에 탑승하려는데 차 바로 옆 큰 나무에서 그냥 새소리도 아니고 새 무리가 단체로 지저귀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기자는 이 부분에서 드디어 호주에 당도했음을 느꼈다.

잠이 덜 깨서일까, 마치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시끄러웠던 단체 지저귐에 매우 감성적이게도 ‘이토록 현대적이면서도 자연과 동물이 밀접하게 연결된 나라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멜버른을 비롯해 인근 지역 탐방을 무사히 끝내고 여행기를 시작하려는 지금, 당시를 되돌아보면 그날의 생각이 맞았다.
호주, 그중에서도 멜버른은 남반구의 유럽인 동시에 도시를 벗어나면 그레이트오션로드가 펼쳐지는 가장 호주다운 호주였다.
취재협조 및 문의=호주정부관광청(www.australia.com/02-399-6506)
호주 멜버른=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멜버른 관광의 시작, 시티투어”
멜버른은 남반구의 유럽으로 표현될 만큼 유럽 색채가 강한 도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심 위로는 트램이 움직이고(호주에서는 멜버른이 유일하다) 그 옆으로 종종 사람을 태운 마차가 지나가며 멜버른을 대표하는 역인 플린더스스트리트역은 비잔틴 풍의 돔을 얹어 특유의 유럽느낌을 물씬 풍긴다. 바로 건너편에는 고딕양식의 세인트폴 대성당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작 이러한 면만 갖고 ‘유럽 같네!’ 하고 판단하기엔 조금 아쉬울 수 있다. 근데 좀 아쉬워도 된다. 멜버른은 유럽이 아니니까. 멜버른은 그냥 멜버른이다.
도심 중앙에는 유럽 냄새나는 건물도 있지만 현대적인 건축물도 있고 골목 곳곳에는 멜버른만의 골목 문화도 있다. 커피 골목부터 그라피티 골목까지 멜버른에서 밖에 볼 수 없는 독특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특색 있는 가게들로 눈이 즐거운 멜버른의 아케이드도 빼놓을 수 없다.
 

 멜버른을 대표하는 역인 플린더스스트리트역

멜버른의 관광지를 설명하기에 앞서 멜버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자면, 멜버른은 호주 빅토리아 주의 주도로 호주에서 시드니 다음으로 큰 도시다. 멜버른을 대표하는 것은 골목 벽면을 가득 채운 스트릿 아트와 멜버른 어디에서나 맛 볼 수 있는 향긋한 커피다.

멜버른만의 자유로운 스트릿 아트와 커피 문화는 사실 과거를 알면 더 이해가 쉽다.
멜버른의 시작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멜버른 서쪽의 발라랏에서 대규모의 금광이 발견됐는데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이른 바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됐다. 이렇게 몰려든 세계인들로 인해 다양한 민족문화가 정착하고 또 섞이면서 멜버른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멜버른은 골드러시로 인해 형성된 도시인 셈이다.

멜버른 중심에 위치한 △유레카타워(Eureka Tower)는 골드러시를 표현한 상징적인 건물이다. 골드러시 당시 호주의 첫 번째 유혈혁명이 발발했는데 그게 바로 유레카 혁명으로 유레카 타워는 이 혁명의 이름을 본 따 만든 건물이다. 타워의 꼭대기 층을 보면 빨간 선이 있는데 이 선은 혁명으로 흘린 피를 뜻하고 건물을 뒤덮은 파란 창문은 혁명군 깃발의 바탕색이며 흰색 선은 깃발의 흰색 십자 무늬를 표현했다. 가장 꼭대기는 금색으로 반짝이는데 이는 골드러시를 나타낸 것으로 실제 24k 금으로 장식됐다. 더 놀라운 것은 전 층이 모두 아파트라는 점. 지하 1층, 지상 91층으로 된 유레카 타워의 88층만이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페더레이션 광장에 위치한 멜버른 비지터 센터(Melbourne Visitor Centre).

△유레카 스카이덱88(Eureka Skydeck88)이 바로 그것. 유레카 스카이덱은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로 88층에 올라서면 멜버른 도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익스트림한 레저도 체험할 수 있다. 건물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는 엣지를 체험하는 것인데 약 8~9명 정도의 탑승객을 태운 투명한 박스가 건물 밖으로 밀려나간다. 천정과 바닥, 사방이 모두 투명한 덕에 고개를 아래로 떨구면 아찔한 낭떠러지가, 옆으로 돌리면 아름다운 멜버른 시내가 펼쳐진다.
 

플린더스역 대각선 앞에 자리한 고딕양식의 세인트폴 대성당.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밀착형 관광을 원한다면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에 위치한 △멜버른 비지터 센터(Melbourne Visitor Centre)에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작게는 도심 속 관광명소와 교통정보부터 크게는 멜버른과 주변 데이투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비지터 센터가 있는 페더레이션 광장은 매일 수많은 멜버니언이 찾는 곳으로 매일 각종 공연이 열린다. 주말 밤에는 광장과 가까운 곳에 설치된 무대에서 열광적인 클럽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여행자로서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 WIFI가 제공된다는 것. 비지터 센터에서는 종이 정보를 챙기고 광장에서는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면 되겠다.
 
 
“롱블랙 한 잔은 멜버른에 대한 예의”
멜버니언들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멜버른에는 아메리카노가 없다. 대신 아메리카노보다 두 배는 더 진한 롱블랙이 있다.

멜버른의 커피가 싸고 맛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과거 이탈리아와 영국인들이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와 영국의 티 문화가 오랜 시간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멜버른에는 글로벌 체인 카페보다 현지 카페의 명성이 더 높다. 호주에서도 유럽의 티 문화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멜버른 여행에 커피를 빼놓을 수 없겠다. 멜버른의 카페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으로는 카페가 밀집한 콜린스 스트릿(Collins st)과 리틀 콜린스 스트릿(Little Collins st)을 추천한다.
 

블록 아케이드(The Block Arcade) 내 유명 티 카페이자
130년의 역사를 가진 홉툰 티룸스(Hopetoun Tea Rooms)

콜린스 스트릿에 위치한 △블록 아케이드(The Block Arcade)는 마치 오래된 유럽의 역 내부를 재현한 듯 높은 유리 돔 천장과 모자이크 바닥이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아케이드 내에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초콜릿 가게인 △헤이그 초콜렛(Haigh’s Chocolates)과 최근 종영한 ‘테이스티 로드 인 멜버른’에서 소개된 티 카페 △홉툰 티룸스(Hopetoun Tea Rooms)가 있다. 모두 호주를 대표할 정도로 오랜 역사와 높은 인지도를 갖춘 곳들이다.
 

로얄 아케이드(Royal Arcade)에서 만난 귀여운 커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상점이 많다.

블록 아케이드 건너편에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 중 하나인 △로얄 아케이드(Royal Arcade)가 있다. 1869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옛 건축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유난히 특색 있는 가게들이 많다. 러시아 인형인 마트로시카 가게부터 게임 가게, 수제 사탕가게 등 눈과 발길을 사로잡는 상점들로 가득하다.
상점도 상점이지만 로얄 아케이드 중앙에는 심상찮은 마카롱 가판대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런닝맨 마카롱집’으로 유명하다. ‘런닝맨’에서 송지효가 이곳 마카롱을 먹고 감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30년의 역사를 가진 베이커리 카페 로렌트(LAURENT)에서는 프랑스식 바게트 샌드위치는 물론 향긋한 멜버른의 롱블랙을 맛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리틀 콜린스 스트릿에는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카페들이 많은데 30년의 역사를 가진 베이커리 카페 △로렌트(LAURENT)는 호주에만 14개 지점을 운영하는 호주 대표 베이커리 카페로 프랑스인 쉐프가 운영하며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에게도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롱블랙은 물론 프랑스식 바게트로 만든 각종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리틀 콜린스 스트릿의 허브 아케이드에 위치한 △ 초콜레이트(Chokolait) 역시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초콜릿 디저트 카페로 진한 벨지안 핫초코와 폭신한 머랭 케익 ‘파블로바(Pavlova)’를 맛 볼 수 있다.
 

초콜레이트(Chokolait)에서 맛 볼 수 있는 머랭 디저트 ‘파블로바(Pavlova).

아케이드 주변으로도 멜버니언들의 사랑을 받는 카페들이 즐비하다. △디그레이브 스트릿과 센터 플레이스(Degraves st & Centre Place)는 멜버른의 골목 문화를 제대로 모아 놓은 곳이다. 가로로 성인 여자 보폭으로 다섯 번 정도면 꽉 차는 좁은 골목 사이에 걸을 공간만 놔두고 전부 테이블이 들어차 있다. 이민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은 호주답게 커피뿐만 아니라 스프, 스시, 컵케익 등 다양한 국적의 간편식들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상점들은 대게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오후 네 시쯤이면 모두 문을 닫으니 꼭 이 골목에서 노천커피를 즐겨야겠다면 일찍 오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커피 타임을 놓쳤대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골목 전체가 화려한 그라피티 예술로 가득해 벽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니까.

“눈길 사로잡는 골목예술에 빠지다”
디그레이브 스트릿의 그라피티 아트가 아쉬웠다면 멜버른 중심에 위치한 스완스톤(Swanston st)과 러셀 스트릿(Russell st) 사이에 위치한 △호시어 레인(Hosier Lane)으로 가보자.
직역하면 양말장수 거리쯤 되는 이 골목은 사실 멜버른에서는 성공적인 골목 문화 사업의 사례이자 한국에서는 ‘미사 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2004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배경이 된 이후 한국에서는 ‘미사거리’라는 애칭으로 불려 지기 시작했다. 당시 TV화면을 뚫고 나올 듯 강렬한 색채의 골목과 드라마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더해져 많은 여행자들의 멜버른 여행을 부추겼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골목은 많은 여행자들의 포토존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실 과거의 호시어 레인은 부랑자들의 집결지이자 마약 상들의 마약 거래 장소로 이용됐던 뒷골목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존재했던 벽화들은 그저 낙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멜버른은 이 낙서들을 골목예술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그라피티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합법적으로 벽화를 그릴 수 있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어디에도 없는 그라피티 골목이 만들어졌다. 호시어 레인의 강렬한 벽화가 알려지자 골목을 찾는 사람들은 더 이상 마약거래상이 아닌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됐으며 멜버른의 어엿한 골목예술 명소가 됐다.
 
 호시어 레인을 걷다보면 발견할 수 있는 빨랫줄 위 신발들. 
과거에는 이 아래서 마약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호시어 레인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두 건물 사이를 올려다 보면 빨랫줄이 연결돼 있는데 그 위에는 신발들이 어지럽게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갱들의 암호라고 한다. 신발이 걸린 골목 아래서 마약 거래가 이뤄졌다는 뜻이라고. 물론 지금은 마약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건물 사이에 불규칙하게 매달린 신발들도 설치 미술로 보였을 정도로 호시어 레인은 밝고 깨끗하다.
 

멜버른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에 위치한 △피츠로이(Fitzroy)와 △콜링우드(Collingwood)에서도 멜버른 골목예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이 두 지역은 지역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라고 여겨질 정도로 다양한 작가의 고 퀄리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부터 온 건물이 대형 벽화의 캔버스로 이용됐을 만큼 건물 곳곳에 벽화가 빼곡하다. 이곳의 벽화는 아무나 멋대로 그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멜버른의 이름난 벽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그림의 수준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극사실주의 벽화부터 초현실주의까지 그림을 잘 몰라도 누구든 ‘와!’ 하고 감탄을 자아낼 만큼 멋진 벽화들이 건물 곳곳에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