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06호]2015-09-11 10:52

현지취재 - 홍콩(下)




홍콩에서‘예술’과 진한 우정을 맺다
세계가 주목하는 ‘홍콩아트’로 여행이 풍부해진다
 
 

글 싣는 순서
홍콩<上> 미식&나이트라이프의 천국
● 홍콩<下> 소호에서 홍콩아트를 경험하다
 
 
  
여행객들의 여행패턴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찍고, 찍고 또 찍었던 과거의 여행패턴이 힘을 잃은 지 오래. 이제는 한 곳에서 깊이 있는 여행을 즐기려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 여행자라는 신분을 티내지 않고 현지인처럼 여행하려는 트렌드도 이와 같다.

단순히 먹고 쇼핑하고 휴식을 취하려는 여행도 이제는 옛날이다. 여행자들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해야만 여행지는 살아남는다. 여행자의 니즈에 부합하지 못하는 여행지는 밀려나고 만다.

홍콩이 ‘스테디셀러’인 이유다. 홍콩은 여행자들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다. 쇼핑으로 시작해 미식과 나이트라이프로 인기를 구가한 홍콩은 그곳에 ‘아트’를 더했다. 홍콩은 명실상부 전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지역이 됐다.

사실 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림이나 미술, 사진, 조각 등 전시작품을 보기 위해 해외로 나간다고 하면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마치 ‘초밥이 먹고 싶어서 일본을 당일치기로 가는 것’처럼 혀를 끌끌 차는 지인들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고 과거와 달리 ‘여행’ 자체에 대한 개념이 확대되면서 (시샘과 부러움은 여전하겠지만) 따가운 시선이 약해졌다.

홍콩을 가보지 않았건 가봤건 상관없다. 홍콩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올가을 또 생긴 셈이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을 보고 느끼기 위해 홍콩으로 가자!

취재협조 및 문의=홍콩관광진흥청(www.discoverhongkong.com/kr)
홍콩=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상급자 코스부터 시작! 갤러리 투어”

최근 세계 예술가들의 등용문이 된 홍콩은 ‘갤러리 투어’를 통해 여행 콘텐츠를 보강했다. 홍콩 현지 작가나 중국 본토, 아시아에만 한정된 작품들이 아니라 전 세계 내로라하는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관련 축제들도 봄, 가을마다 펼쳐지고 있다. 자연스레 홍콩에서 세계 예술 트렌드와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갤러리 투어’를 즐기려는 여행자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홍콩에 대한 부연설명이 길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아 경제의 중심지로 불렸지만 이제는 아시아 경제·예술의 중심지가 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과 함께 세계 예술가들의 꿈의 무대로 부상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였던 홍콩은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예술시장 마저도 가파르게 성장해 서구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홍콩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쇼핑몰이나 편집숍만큼 눈에 띄는 게 갤러리숍이다. 막연히 ‘갤러리 투어’를 즐기려고 하면 너무 많은 갤러리숍들 때문에 여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이라면 무난하게 한 건물에 두 갤러리가 자리한 ‘코노트로드 센트럴 50번지 빌딩’으로 가자. 포시즌호텔 맞은편에 자리한 이 빌딩에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와 ‘갤러리 페로탱(Galerie Perrotin)’이 자리한다.

△화이트 큐브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건물 입구에 바로 연결된 문이 있다. 2층으로 구성된 동 갤러리는 이름답게 하얀 벽들 사이로 띄엄띄엄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작품을 더욱 부각시킨다. 전시 작품은 2~3개월을 주기로 변경된다.

화이트 큐브는 아시아 신인 작가 발굴을 목표로 동 갤러리를 오픈한 만큼 아시아 신예 작가들의 작품들이 자주 전시된다.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http://whitecube.com)

△갤러리 페로텡은 동 건물 17층에 자리한다. 고층에 자리한 만큼 센트럴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은 전시하진 않았지만 가장 훌륭한 전시작품이다. 넓은 창으로 내다보는 차창 밖 풍경은 갤러리 페로텡을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든다. 화이트 큐브에 전시된 작품들과 비교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갤러리 페로텡에 전시된 작품들은 무난한 듯 난해한 전위적인 작품들이 다양하다. 예술작품에 문외한이라면 화이트 큐브보다는 갤러리 페로텡을 첫 장소로 택하면 흥미가 더욱 샘솟게 될 것이다.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www.perrotin.com)
 

 

 
“자유롭게 감상하고 싶다면 스트리트 아트”

소호가 뜨는 이유가 비단 세계가 주목하는 갤러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앞서 소개한 ‘화이트 큐브’와 ‘갤러리 페로텡’처럼 으리으리한 갤러리숍들도 많지만 톡톡 튀고 조금은 가볍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숍, 디자인숍도 많다.

무엇보다 소호와 노호, 포호를 아우르는 할리우드 거리 곳곳의 스트리트 아트는 ‘홍콩 아트 투어’를 테마로 정하기에 100% 만족할만하다. 스트리트 아트라고 해봤자 사실 별 것 아니다.

길목마다 그려진 벽화와 디자인숍, 골목을 빠져나와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른 지역처럼 바뀌는 것들의 재미 정도? 그런데 전편에서 얘기했듯 ‘별 거 아닌 것’들이 주는 재미와 감동은 여행에서 무시할 수 없다.

시골의 5일장처럼 가판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과일도 팔고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빨간 고깃덩어리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가게 앞에 걸려있는 모습을 홍콩에서 볼 줄이야.

사실 기자가 상상한 홍콩은 회색의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그 안에서 형형색색의 화려한 불빛을 받으며 전시된 명품 가방, 구두, 옷 등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친숙한 풍경 또한 볼 수 있다니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경적을 울리는 차와 물건을 사고 파려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시장을 지나고 다음 골목으로 넘어가면 웬걸. 마치 다른 도시로 넘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테라스에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거나 시가를 피우며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현지인과 예스러운 골동품 가게들이 즐비해 있다.

조금 부풀려 얘기하자면 유럽의 한 도시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소호에서 노호, 포호로 이동하고 있는 거란다. 소호가 청담동과 인사동의 중간이라면 포호는 홍대, 이태원의 느낌이 물씬 난다. 허름한 시멘트 건물에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려 넣고 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 구간이 그 옆에 자리한 독특한 벽화 하나로 감각적인 곳으로 변모한다.

사실 포호는 과거 인쇄소들이 터를 잡고 상업을 발달시킨 곳인데 인쇄소 산업이 바닥을 치며 함께 죽어가던 이 지역에 신인 예술가들의 붓 터치가 하나 하나 모이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Tip : 소호와 노호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는 곳이 △문무사원(만모사원)이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 사원으로 무신 관우와 문신 문창제를 모시고 있다. 무신 관우는 액을 쫓는 신이며 문신 문창제는 문자, 문필을 관장하는 성인으로 관리의 수호신이다. 복을 비는 홍콩 현지인이나 관광객들로 붐비는 소호의 랜드마크다.
 
 

 
“홍콩아트 입문자라면 PMQ”

기본 지식도 없어 홍콩 아트 투어가 난해하게 느껴진다면 입문자코스를 통해 친밀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뭐니 뭐니 해도 아트 투어의 입문자코스는 △PMQ다. 쉽게 인사동 ‘쌈지길’을 생각하면 되는데 그보다 규모도 크고 역사도 깊다. PMQ는 홍콩 할리우드 거리 중에서도 최근 뜨는 지역인 포호에 위치한다. 소호의 갤러리 투어와 스트리트 아트까지 감상하고 나면 마지막 종점지가 자연스레 PMQ가 된다. 문무사원에서 다른 곳 들리지 않고 쭉 직진한다면 걸어서 15분 정도 소요된다.

PMQ(Police Married Quarter)라는 건물 이름이 말해주듯 동 건물은 과거 홍콩 경찰들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던 기숙사였다. 건물의 역할을 잃은 지는 오래고 자리만 차지하던 동 건물을 개보수해 현대적 감각을 더한 갤러리숍으로 탈바꿈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현재는 130여 개가 넘는 대형 디자인 갤러리와 편집숍들로 현지인과 전 세계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PMQ의 매력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입점한 가게들을 구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이 주는 재미다.

입점한 가게들은 현지 신인 아티스트들이 주를 이루고 15곳의 팝업 전시공간도 자리해 쇼핑과 전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건물이다.

건물은 세워진 ‘ㄷ’자 형태인데 학교처럼 긴 복도와 창문으로 옆 건물을 조망할 수 있게끔 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경찰 기숙사였음을 느낄 수 있는 옛 디자인들도 녹아있다. PMQ의 영업시간은 이른 오전 7시부터 늦은 밤 11시까지로 일정의 처음이나 끝을 장식해도 무방하다. (www.pmq.org.hk)

인사동과 삼청동을 처음 가면 어디까지가 인사동이고 어디서부터 삼청동인지 모른다. 지리를 헤매거나 잘 모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좋으면 됐다. 소호, 노호, 포호가 그렇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소호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홍콩의 할리우드 거리가 좋은 거다. 젊은 감각도 느낄 수 있고 예술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담이라는 아우라를 던져버리기에 더없이 좋다.

허세라면 허세일 수 있지만 여행이 보다 풍성해지고 질적으로 성장한 느낌도 드니 만족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