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21호]2016-01-08 10:30

[신년 심층기획1] 여행사 위협 요소
글 싣는 순서
●여행시장 무엇이 문제인가?
외부 기업들의 시장 공략 사례 분석

 
 
“바닷속 물고기 한가득 어부는 빈손”
 
 
2016년 병신년(丙申年)이 밝았다. 붉은색과 꾀 많은 원숭이가 만났다고 해서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

여행시장은 어떨까? 국내 해외여행시장은 안정화를 지나 지난 몇 년간 급속한 변화 속에 과도기를 겪고 있다. 시스템과 트렌드는 벌써 한참 전에 달라졌지만 완벽한 개별여행시장으로 틀 전체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

아직도 많은 여행사들이 저가 패키지 및 그룹유치를 최대 수익원으로 여기고 대형사조차 외국OTA와 경쟁할 만한 시스템이나 창조적인 상품(혹은 목적지) 개발에는 머뭇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될수록 결국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업체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본지는 2016년 첫 특집호를 통해 우리 여행시장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되짚어봤다. 본지가 제시한 문제점과 시장의 현 상황 그리고 부정적 요소들을 국내 기업들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싶어서다.

올해 여행시장의 트렌드와 2016년 달라지는 제도<8면 참조>, 최근 화두인 고객 개인정보 보호 관리 전략<6면 참조>에 대해서도 함께 담았다. 추가로 서비스업의 자세와 업무 집중이라는 명분아래 직원들의 화장실 이용 시간이나 짧은 휴식 시간조차 용납지 않는 우리 기업들의 부끄러운 민낯은 르포<47면 참조>로 다뤘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위기 진단 기사는 총 2회에 걸쳐 연재한다. 1회는 여행시장의 문제점을 내부에서 찾고 2회에서는 시장을 위협하는 외부 기업들의 노력과 SWOT 분석을 담는다. >
 
 
금융, 유통, 온라인 등 여행시장 위협하는 강자 속속 등장
해외여행 수요 지속 증가, 여행사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비슷한 상품 및 서비스 수준으로는 고객 마음잡기 힘들 듯
 
 
<2명 중 1명 “최근 3년간 한 번 이상 해외여행”>
공급과 수요 논리를 감안했을 때 일단은 희망적이다. 절대적으로 먹거리가 부족하지는 않다. 현대 사회에서 여행은 과거처럼 내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신기루 같은 개념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일 년에 한 번 혹은 휴가와 연차를 이용해 평균 두 세 차례 여행을 떠나는 여행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경기 침체와 단군 이래 최대라 불리는 취업난 그리고 지나친 경쟁심화와 내수 둔화로 소비자들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지만 유독 여행에 대해서만은 관대함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와 여행이 얼마나 가깝고 폭이 좁은지는 설문조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7월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무려 전체의 77.7%에 달하는 비율이 “요즘은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특히 남성(74.7%)보다 여성(80.4%) 그리고 고연령층(20대 62%, 30대 76.4%, 40대 87.6%, 50대 84.8%)이 해외여행을 일상적인 활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는 장기적인 시장의 타깃이 나타나는데 해외여행을 자랑이 아닌 삶의 연속으로 보는 여성 고객과 은퇴 후 조금은 편안하게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노후 세대가 여행사들의 차세대 수익원이 될 것이다.)

이밖에 10명 중 7명(69.2%)은 최근에는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 2명 중 1명(50.3%)은 최근 3년 동안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해외여행의 경험(남성 48.9%, 여성 51.5%)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며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다녀온 연령대는 30대(56%)로 꼽혔다.

특히 이 조사에서 주목할 것은 미래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이다. 전체 중 89.7%가 앞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해외여행 ‘비용’에 대한 부담감은 쉽게 지울 수 없지만 90%에 가까운 비중이 여행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2014년 1,6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해외로 출국했고 2015년에는 무난한 1,900만 명 돌파가 예측된다. 2012년 이후 해외 출국자 수는 한 차례도 줄어들지 않았다. 상황이 계속될 경우 약 2년 뒤에는 한 해 출국자 2,000만 명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들도 많다.

우리 국민 중 3분의 1이상이 매년 해외로 떠나고 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티비를 틀면 단골풍경으로 나오던 익숙한 장면들, 즉 꽉 막힌 도로에 서서 그래도 손을 흔드는 가족들의 모습은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꼬리를 물고 서있는 여행자들로 대체된지 오래다.

개인 연차나 월차를 활용한 직장 여성들의 3,4일 단거리 여행은 수요가 워낙 고른 탓에 여행사들이 놓칠 수 없는 1대 고객으로 자리매김했다. 부모가 환갑을 맞거나 가족끼리 기념할 행사가 있으면 식당에서 잔치를 열기 보다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지난 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로 꼽히는 일본 오사카에는 한국어 간판과 한국어 안내 책자가 관광지마다 빼곡하다. 이쯤 되면 근원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 도대체 왜 넘쳐나는 수요에 비해 여행업계는 항상 위기인가?
 
 
<여행사를 믿지 못하는 고객, 고객을 믿지 않는 여행사>
약 3~4년 전부터 시장에 등장한 신조어 중 하나가 ‘탈 여행사’ 혹은 ‘여행사 의존 거부’ 등이다. 여행사가 주도하는 일정이나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하지 않은 호텔, 관광지, 식당, 교통 방법 등에서 탈피해 오롯이 개인의 욕구와 선택에 따라 여행을 손수 만드는 개별여행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여행사 이탈 고객’이 증가한 데 따른 상황을 풀어 설명하고 있다.

온라인의 빠른 발달, 넘쳐나는 정보와 콘텐츠, 스마트폰의 등장, 항공 및 호텔 예약 엔진의 가속화, 결제 시스템 변화 등 작금의 여행시장은 모든 면에서 개별여행객을 위주로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굴러간다. 오히려 패키지나 그룹여행객을 위한 배려는 드물다. 개별여행이 여행시장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고 같은 가격이라면 여행사 보다는 개인이 예약한 호텔이나 항공을 믿는 여행자들에게 여행사가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가격’이나 특전이라 이름붙인 경품들 밖에 없다.

A여행사 홍보 팀장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여행사를 믿는 것이 약간 바보 취급을 받는 것처럼 문화 자체가 변했다. 언론을 타고 벌써 몇 년째 여행사의 잘못된 관행이나 패키지여행의 강제적인 옵션, 현지 가이드들의 안 좋은 언행 등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보도되는 탓이다. 여행사 문제도 있다.

그러나 분명 거품이 없는 합리적인 상품 비용인데 소비자는 우선 여행사가 크게 남기고 있다고 오해부터 한다. 가격을 더 내려달라고 요구하거나 본인이 같은 날짜에 어떻게든 1천 원이라도 더 싼 방을 알아내서 컴플레인을 할 때는 솔직히 그냥 혼자 가라고 말하고 싶다(웃음)”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어떨까? 취재를 위해 30대 이상의 여성 회원들이 주로 가입해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렸다. 평소 여행을 갈 때 여행사를 이용하냐?는 질문과 여행사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는데 댓글의 70% 이상이 조건이 맞는 에어텔이 아니라면 굳이 여행사를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패키지 상품에 있어서는 소비자들의 불신이 생각보다 높았는데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특정 여행사의 상품은 쓰지 않을 것이라는 가시 돋힌 답들이 많았다.

더불어 40대 이상의 중년 회원들이 많은 산악회 동호회에 가입해 같은 질문을 던졌다. 40대 이상이라면 조금은 다른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허니문 부도, 패키지 일정 중 가이드의 불합리한 옵션 요구, 여행 중 고객 사망, 상품 취소 후 수수료 부과, 질 나쁜 식사 등 주로 부정적인 키워드가 다량으로 올라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원은(31세, 여, 중소기업 기획마케팅 팀 근무) “믿을 만한 여행사가 정말 있나?”라며 “여행사는 백화점과 다르지 않다. 모든 상품을 취급하고 겉으로는 상당히 세련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전문적인 능력이나 노하우도 떨어지는 것 같다. 알고 있는 여행사도 드물고 홈쇼핑에 방송되는 여행사 상품들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엄마 아빠 해외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도 막상 가서 현지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속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전업주부 강은혜 씨(34세, 여)는 다음 주 월요일에 주변 지인들과 일본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불과 한 달 전에는 같은 멤버들과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고 작년 가을에는 괌 PIC에서 친정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치렀다. 그녀는 평일 출발 상품이 주말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출발 직전까지 기다리면 밴드나 카카오스토리에 원래 가격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특가 상품이 나온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성수기나 사람들이 몰리는 특정 연휴에는 절대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는다.
 
 
 
<손님 줄고 상품 가격 내리고 여행사 수익 줄고 다시 손님 줄고!>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1997년 IMF를 거치면서 우리 여행시장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원래 인기를 끌었던 1세대 여행 기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신생 업체들이 새로운 개념의 여행상품과 고객 서비스 전략을 들고 나와 대기업 못지않은 성장을 일궜다.

하나투어, 모두투어네트워크, 인터파크투어 등 일부 기업에 한정된 얘기지만 이들의 조직도나 사회공헌도, 사업 다각화 전략, 고객 서비스, 기업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는 타 업종 대비 상당히 앞서나간다. 그러나 몇몇 기업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몸집을 키운 것과 별개로 중소여행사들과 영세기업들의 빈곤은 나아지지 않았다. 항공사로부터 받던 커미션이 폐지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의 트렌드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멈춰있던 것이 패배의 큰 원인 중 하나다.

우리여행시장은 몇 년째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손님이 감소한 여행사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이벤트 성으로 상품 가격을 인하한다. 가격이 내려가면 현지에서 제대로 된 식사나 차량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다. 여행을 다녀온 고객들이 컴플레인을 하고 여행사를 믿지 않는다.

여행사는 여행사대로 현지 랜드에게 피해를 떠맡긴다. 현지 랜드는 더욱 불친절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다시는 해당 여행사를 찾지 않는다. 손님이 준 여행사는 더더욱 상품 가격을 내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직원들의 월급을 인하하고 직원들을 쫀다. 고강도의 업무와 낮은 임금에 지친 직원들은 업계를 떠난다.

이러한 적자구조가 계속되면서 여행사 간의 지나친 경쟁이 결국 시장 전체의 질을 떨어트리고 업계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는 자기반성형 고백들도 있었다. B여행사 항공수배팀 본부장은 “오늘 신상품을 내면 대형여행사가 바로 하루 뒤에 같은 상품에 가격만 5만 원을 내려서 출시하는 곳이 여행업계”라며 “같은 여행지에 같은 일정, 같은 호텔과 같은 수준의 차량 여기에 비슷한 식당까지, 과연 여행사가 어디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돈 밖에 없다”고 답했다.

발전 없는 시장의 모습을 답답해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올해로 근속 15주년을 맞았다는 C여행사 영업팀 간부는 자신이 게을러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3년 정도 일하면 시장의 생리를 깨닫는다. 항공사와의 사이에서 관계 조절, 직원들을 대하는 방법, 거래처를 뚫고 관리하는 방법 그리고 저가 상품을 만들어 납입하는 구조 등 시장은 겉으로 외치는 것과 달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 뭔가 대단한 도전을 하고 싶거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리점을 차리든지 뭘 하든지 거의 떠났다. 게을러서 오래 버티고 있다”고 다소 씁쓸한 속내를 전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