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22호]2016-01-15 10:26

기획2016 신년기획-여행시장 위기요소 진단 (下)





“고객님 카드 만들고 여행 한 번 떠나세요?”
토종 여행사와 OTA를 뛰어 넘는 각계각층의 여행 서비스
카드사-렌터카-면세점 등 여행상품 제공 서비스 점차 확대

 
 
글 싣는 순서


여행시장 무엇이 문제인가?
●외부 기업들의 시장 공략 사례 분석
 
 
 
 
“삼성이 만드는 여행상품, 네이버가 기획하는 국내 MICE, 신세계백화점이 진행하는 제주도 투어 등이 현실화 될 수 있을까?”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업 다각화를 꺼내든 대기업 및 금융, 유통 기업들이 여행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속적인 수익 악화와 저조한 수출 실적으로 제조업, 건설업, 조선업 등 정통적인 기간산업들이 위기 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유독 여행시장의 붐은 꺼지지 않고 몇 년째 타오르는 탓이다.

지난 해 약 1,900만 명의 한국인이 해외로 출국하면서 사상 최대의 여행실적을 기록하는 등 수요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 카드사의 경우 지난 해 여행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직접 모객까지 시도하려 했던 사례가 있어 이 같은 외부 업계의 움직임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만약 대기업 혹은 전문 IT그룹, 유통그룹들이 국내 여행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상품을 만들고 우리 여행사들과 같은 선에서 경쟁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단순히 시장 노하우와 그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로 여행사들이 버틸 수 있을까?

본지는 신년 기획으로 국내 여행업계를 위협하는 요소를 찾고 분석하는 기획 기사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호에는 외부 기업들의 시장 진출 노력과 사례, 앞으로의 전망, 여행사의 대응 전략 등을 고민해봤다.

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여행을 여행사를 통해 구매하지 않는 시대
 

“30대 여성 직장인 A씨는 다가오는 설 연휴 가족들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패키지가 아니라 렌터카를 빌려 자유여행을 즐길 예정이며 동선은 구글 지도를 통해 대강 잡았다. 일정은 인터넷에 나와 있는 블로거들의 여행 후기와 자주 즐겨 찾는 여행 커뮤니티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항공과 호텔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카드사의 여행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 마일리지 할인 혜택으로 시중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했다. 결제를 위해 항공권 발권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과 전화로 통화한 것 외에는 A씨는 이번 여행에서 단 한 번도 여행사 홈페이지를 접속하거나 여행사를 통하지 않았다.”

 


모바일과 온라인의 발달 그리고 사회 트렌드의 변화로 여행시장이 개방되면서 과거와 달리 누구나 쉽게 여행상품을 검색 및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굳이 발품을 팔아가며 여행사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주변 가까운 은행이나 백화점, 카드사 홈페이지 등에서 내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바로 찾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대형 인센티브나 그룹이 아닌 이상 여행사의 정해진 맞춤 상품을 구매하는 명분이 약한 것도 단점 중 하나다.

이미 다수의 기업들이 항공사, 여행사, OTA에 버금가는 여행 서비스와 수준 높은 여행 콘텐츠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물론 카드사나 기업의 경우 아직까지는 입점 여행사들과 제휴사를 통한 중간 판매자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여행시장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소비자와 직접 만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

특히 한국 경제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일본을 따라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10년간 장기적인 불황은 피할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기업들의 긴축 경영과 사업 다각화 전략은 더 심해질 것이고 결국 소비자들이 유일하게 지갑을 여는 여행시장은 기업들에게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개별시장의 트렌드 전환과 여행사를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증가는 여행상품을 구매하는 전 과정에 있어 여행사의 도움을 거부하는 문화가 장착되면서 여행사에서 가격을 주고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바보처럼 취급받고 있다.
 
 




▲카드사, 보험사, 렌터카 업체 “돈 되는 건 다 팔아”

2000년 대 후반 여행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이슈가 하나 있다. 당시 한 카드사가 여름 성수기 시즌 자신들의 고객만을 위한 발리 전세기를 단독으로 운영한 것. 여행사와 카드사가 제휴를 맺고 항공권을 할인 판매하거나 상품 프로모션을 진행한 경우는 그 전에도 많았지만 카드사가 주도적으로 전세기를 띄운 일은 전례가 없는 만큼 업계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토종 여행사 외 다른 기업들의 시장 진출을 허락하는 것은 업계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라고 비난했지만 자본과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갖춘 대형 카드사 앞에서 응집된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온라인 여행사에서 제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카드사, 면세점, 은행 등과의 제휴에 있어 예전보다 여행사의 입지가 훨씬 줄어들고 있다. 특히 신규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한 여행+마일리지 카드 발급은 여행사가 먼저 제안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며 “수수료 인하 및 국내 경기 둔화로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카드사들이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전부 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사가 안 되는 카드는 재빨리 발급을 중지하고 제휴나 아웃소싱 보다는 자체 상품 개발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지금처럼 카드사 여행 홈페이지에 여행사가 판매사로 입점해 있는 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의 이 같은 변화는 달라진 시장 환경에 기인한 결과다. 지난 해 금융당국이 당정 협의를 거쳐 영세·중소가맹점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을 인하함에 따라 카드사들의 경영이 축소됐기 때문.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들은 연간 최대 약 6,700억 원의 수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불어 금융당국이 지난 해 10월 ‘여신전문금융업 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카드사에서도 웨딩과 통신, 보험대리점 등 부수사업을 가능하게 하도록 빗장을 풀면서 카드사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을 뺀 사실상 모든 사업을 부수업무로 취급할 수 있게 됐다.

즉 수수료 감소로 실적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생존을 위해 신사업에는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대형기업들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보험이나 통신 보다는 제휴와 마케팅으로 어느 정도 노하우를 익혔던 여행시장 진출이 그나마 쉽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렌터카 업체들의 주도권 싸움도 흥미롭다. 과거 렌터카는 여행에 있어 선택 가능한 옵션 정도로 취급됐다면 최근에는 여행 전체의 일정을 조율하고 동선을 구축할 수 있는 필수 아이템으로 부각되고 있다.

해외에서의 렌터카 여행에 두려움을 느꼈던 여행자들이 알음알음 운전 정보와 자유여행 기술을 습득하면서 렌터카 업체가 직접 나서 여행상품을 기획, 판매하는 일이 현실화 되고 있다.

국내 대표 렌터카 업체인 AJ렌터카의 경우 장기 렌터카와 단기 렌터카 대여 서비스 외에도 최근에는 제주여행상품 판매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최대 75%까지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멀티 플러스 카드를 발급하기도 했다.

여행자보험·자전거보험 등 특정 보험 상품만을 판매하는 전문 보험회사들의 국내 등장도 여행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특정 보험상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보험회사에 대해 국내 시장 진입을 쉽게 해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이 법이 개정될 경우 보험 전문회사가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해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식의 영업이 가능해 질 수 있다.

 



끝으로 대형 포털들의 여행 시장 잠식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포털의 시장 진출을 단순히 항공권 검색 혹은 호텔 객실 검색 서비스 그리고 키워드 광고 등으로 한정짓고 있다면 어리석다. 네이버는 최근 모바일 지도앱 내에 내비게이션 기능을 탑재해 지난 2일 새롭게 선보였다.

네이버 지도 앱은 장소검색에서부터 대중교통, 자동차 빠른 길 찾기, 거리 뷰, 항공 뷰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며 월 이용자 수가 1천만 명이 넘는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지도 지역 서비스이다.

네이버가 조만간 지도앱을 해외관광지로 구현하고 그 안에 관광 관련 예약 및 구매 서비스를 추가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대부분 입점 구조, 산업 간 융복합 차원에서 우려 적어
 

“XX카드 여행상품은 A여행사의 책임 하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취재 결과 여행사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대기업이나 외부 업종에서 여행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며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과거에는 이 같은 외부 기업들의 시도를 산업 간 융복합 개념으로 이해했는데 최근 들어 협력 관계에서 여행사가 배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 역량 강화를 위해 업종을 뛰어넘는 융·복합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행사만이 오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카드사들의 영업 행위는 여행사들도 적지 않은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수의 카드사들의 홈페이지 입점 여행사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면서 책임은 오롯이 여행사에 떠넘기고 있다. 카드사 뿐 아니라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홍보하는 외부 기업들은 모두 자신들은 유통만 할 뿐 전체적인 책임은 해당여행사에게 있다며 결정적인 순간에 고객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OTA 업체에서 기획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B씨는 최근 한 카드사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사에서 여행시장의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웨딩, 식품, 보험 등과 연결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기업 브랜드를 앞세워 소비자를 유치하려는 전략”이라며 “그러나 윗선에서도 여행 산업의 마진이 높지 않고 경쟁이 심하다는 인식이 있어 직접적인 확대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다. 스카웃 관련 주요 내용은 여행 관련 파트너사를 끌어오라는 의미였는데 연봉이 높기는 했지만 조금 괘씸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들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누워서 떡만 먹으려고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