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26호]2016-02-19 10:14

이슈 엔 토크




“전공 따로 취업 따로, 4년 동안 배운 건 뜬 구름”
관광학 전공자 여행사 취업 비중 감소
 
 

기나긴 겨울 끝에 여행사 채용 시즌이 돌아왔다. 3월을 기점으로 대형여행사와 중견사들의 직원 공개채용이 서서히 시작될 전망이다. 최근 (여행업계) 채용 시장의 주요 트렌드는 관광학 전공자들의 여행사 취업 기피 현상이다. 4년 혹은 2년제 대학을 졸업한 관광학(혹은 같은 계열) 전공자들이 여행사 대신 일반 기업이나 유통, 무역, 공무원 시험 등으로 몰리고 있다. 여행사 역시 전공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일부 운영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전공자를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대형여행사가 대기업 못지않은 사업 다각화와 글로벌 공략을 시작하고 한 해 1,900만 명이 넘는 내국인이 해외로 출국하는 대형 시장에서 왜 기업과 전공자는 점점 평행선을 달리는 걸까?

취재부 titnews@chol.com
정리=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관광학과에서는 뭘 배우나요?”

▲김문주 차장(이하 문) : 2012년 4월, 15주년 창간 특집 기념호 만들면서 관광학을 전공하는 4명의 학생들과 좌담회를 했다. 당시 네 명의 전공자들과 두 시간 넘게 토론을 했는데 전공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여행사 이름을 정말 몇 개 밖에 몰라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말고는 사실상 전멸이었다. 아마 지금 물어보면 인터파크투어나 내일투어, 여행박사 정도 추가되지 않았을까? 취업 지망도 남자는 호텔이나 대기업이고 여자는 99% 승무원 지망이라고 하더라. 여행사 말고 여행업계에 어떤 직종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관광학을 선택하면 뭘 배우는가?
 

▲이예슬 기자(이하 슬) : 다른 학과와 똑같다. 전공 필수와 선택으로 나뉜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관광법규, 관광학원론, 호텔경영론, 레저산업론, 관광마케팅, 여행사경영론, 관광영어, 리조트경영론 등이 필수인데 대부분 개론서 즉, 이론 중심으로 실무와는 거리가 있다.

선택은 항공서비스, 이벤트운영관리, 외국어 (관광영어, 관광일어, 중국어 등) 그리고 테마파크 산업론, 외식경영, 식음료,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조금 유연한 과목들이다.
 

▲강다영 기자(이하 강) : 같은 전공자로서 말하면 ‘관광학’은 순수 인문학이 아니라 여러 학문이 합쳐진 ‘융합 학문’의 개념이다. 관광학과라고 해도 학교의 선호도나 교수들의 성향에 따라 커리큘럼이 다를 수밖에 없고 편차도 심하다.

영문학, 국문학, 신문방송학 등은 학교마다 다 비슷한 이름이지 않나? 관광은 ‘관광경영’부터 시작해 ‘호텔관광경영’, ‘호텔관광’, ‘관광레저’, ‘컨벤션 경영’ 등 학과 이름만 해도 수십 가지다. 역사가 오래된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자주 변하고 있고 지향하는 관점에 따라 주력하는 과목도 다르다.
 

▲문 : 내가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현장과 너무 떨어진 커리큘럼 아닌가? 여행 시장의 변화와 함께 좀 더 생산적이고 새로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모바일 시스템 구축이 이미 잘 돼 있어서 항공권 검색부터 발권까지 전부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하는 시대에 아직도 토파스 배우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더욱이 원론적인 개념이라면 직판사 업무와는 연결고리도 약하다. 이제는 여행사 입장에서도 관광학을 전공한 학생들을 그렇게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실무진들과 얘기를 해보면 신입사원은 전공여부를 떠나서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에 실제 여행사에 취업한 동기들이 있는가?
 

▲강/슬 : 싫다고들 말하지만 자연스럽게 여행사 혹은 호텔, 항공사 쪽으로 취업 할 수밖에 없다. 고학년으로 올라가고 취업이 임박해지면 많은 관광학도들이 국내 유명 호텔과 여행사에 입사 지원을 하고 항공사 입사를 위해 따로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내 주변의 관광학도들은 대부분 첫 취업으로 여행사를 선택했고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지인들이 여행사 업무를 오래 버티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학교에서 배우던 교육과 실무가 매우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관광학은 대체로 인바운드나 인트라바운드에 국한돼 있다. 항공이나 호텔을 공부한다고 해도 항공예약 방법이나 호텔 용어 등 원론적인 것을 배우는데 그치기 때문에 사실상 전화상담과 영업, 유통에 가까운 여행사 업무는 관광학도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을 거라 짐작된다.

여행사로 취직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혹은 ‘스스로 다시 공부했다’고 하더라. 사담이지만 기자 또한 업계지 들어와서 기사 작성만큼 힘들었던 것이 이 바닥 생리를 깨우치는 거였다. GSA 역할이랑 여행사와 랜드사 관계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웃음) 관광학은 분명 재밌다. 하지만 학문과 실무는 다르다.


 

 
“전공자 여행사 기피 현상, 경기 불황만으로는 설명 어려워”
 
▲문 : 여행사 신입 사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 기사에서 신입 사원들 릴레이 인터뷰도 많이 했다. 물론 요즘은 한 여행사에서 1년에서 3년 이상 버티는 직원 찾기가 정말 힘들어졌다.
 
▲권초롱 기자(이하 권) : 공통적으로 눈치를 많이 본다. 우선 기자와의 만남에 불편을 느낀다. 자신들은 아는 게 없다는 말로 첫 운을 뗀다. 정말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자신들이 이 말을 해도 되는 지 안 되는 지, 기준이 없으니까 걱정이 앞서는 것 같다.

그나마 대형사 신입사원들은 당당하다. 소속된 회사에 대한 애사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부심이 있다. 중견사 신입사원들은 어떤 면에서 주눅이 많이 들어있다. 대형사의 경우 간판업무가 중점이다 보니 실질적으로 소비자와 맞닥뜨리는 스트레스가 적다.

반면 중견사 신입사원들은 자신이 생각한 여행사 업무와 현실이 너무 차이가 나서 답답한 경우다. 여행사에 취직한 건지 콜센터 상담원 업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슬 : 좋아하는 일을 하게 돼 의지가 넘치는 사원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원들은 많이 지쳐있다.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대부분 이직이나 업종 전환을 고민한다.

여행업계로 취직한 주변 지인들만 봐도 불과 1년 안에 사직서를 내거나 이직을 계획하고 회사에 보고한 친구들이 많다. 같이 팸투어 다녀봤는데 그 다음주 전화했더니 바로 관두는 양심불량도 있더라.
 

▲문 : 여행사 입장에서 직원 관리 및 육성은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다. 밖으로 보기에는 여행사 볼륨이 크고 해외출장도 자주 갈 것 같으니까 매번 채용 때마다 지원자 원서가 넘쳐난다. 요즘 구직자들 수준이 얼마나 높나?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은 당연하고 토익 만점에 스카이 졸업자까지 여행사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왜 막상 뽑아 놓으면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관두는 걸까? 비싼 돈 들여 관광학까지 공부했는데 말이다.
 

▲권 : 비단 관광산업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고질적인 취업난은 모든 산업군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그래도 이유를 찾자면 국내 관광산업의 발전이 국내 관광기업들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아닐까? 선순환이 안 된다. 여행인구는 급속히 늘어났지만 질적 성장은 없고 관련 기업들은 다양한 악재에 저성장을 유지할 뿐이다.

더 현실적으로는 복지 문제가 크다. ‘관광학’을 4년 배웠고 4년간 투자한 학비와 시간, 그 외의 경비들을 합산했을 때 관광학도들이 전공을 살려 취업해 받는 돈이 터무니없이 작다. 사람인, 잡코리아 등 취업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대형여행사의 경우 대졸 초봉이 3,000만 원대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밖에 여행사들의 급여환경은 하나님도 모르는 ‘회사내규’다. 신입 120~150만 원 안팎, 1~3년차 130~250만 원 등으로 책정돼 있는데 과연 어느 여행사가 이만큼 줄까? 일부는 업무 외적인 업무만을 하다가 떠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출장’을 꿈꾸며 왔다가 신입에겐 ‘출장’은 엄청 먼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슬 : 관광학과 졸업자에게는 일정 기간 학과에서 전화가 온다. 취업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매번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안부를 묻는데 결국 학과 점수를 위해 취업해 있는지 그 사실만 확인하고 끊는다. ‘관광학과, 취업률 몇 프로 달성’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여행사 취업 시 학과 교육과 실무에서 느끼는 차이점, 교육에 추가돼야 할 사항 등이 넘쳐나지만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문 : 이직이 너무 심하다보니 규모가 제법 있는 여행사들은 이제 관광학 보다 경영학이나 IT 계열을 전공한 지원자들을 더 선호한다. 손익 계산을 위해 회계나 경제학을 배운 친구들도 계속 뽑고 사업 다각화를 위해서 현지 영업 경험이 있는 경력직원들도 채용한다. 외국어 잘 하는 사람 점수 높은 것은 당연하고. 언제부터 여행사들이 비 관광학과 출신에 더 끌리게 됐을까?
 

▲권 : 여행사 직원들이 관광학을 전공한 이들을 보는 시선은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것. 추가로 ‘네가 뭘 배웠겠어?’라는 무시도 있다. 그리고 이직 반복은 늘 하는 말이지만 직원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닐까?

관광학 전공자들도 처음에는 경력을 쌓기 위해 월급이 적고 복지가 좋지 않더라도 취업을 하자는 마음이 들어 일단 취직부터 하지만 경력을 쌓고 나면 자신의 몸값을 부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기자가 ‘1년차 여행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획기사를 작성하던 때 이들에게 가장 많이들은 말이다. “1년이 지나니 업계 생리도 어느 정도 알겠고 하는 일도 어느 정도 익혔다. 그런데 월급은 적응이 안 되더라”는 것.

어느 사이 여행사도 경력직을 더 원하다보니 몸값을 올리기에 적정한 타이밍을 노리는 젊은 직원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강 : 관광학 전공자를 우대해야 할 만한 이유가 없다. 덩치 큰 여행사는 대부분 아웃바운드를 주 업무로 한다. 기자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면 관광학과에서는 아웃바운드산업에 대한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다.

게다가 여행사 직원들의 주요 업무는 현지 랜드사 또는 항공사 관계자와의 의견 조율과 상품 판매인데, 관광학 전공자보다는 사고파는 방법, 운영을 배운 경영이나 경제학 전공자가 더 어울린다. 언어 역시 능통하다면 새로운 상품 개발 및 현지인 관계자와의 협업 시 회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매일 소비자들과 만나는 여행사들도 변해가는 소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데 소비자와의 접점은커녕 초기 관광산업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학문’ 이수자들이 지금의 실무를 따라갈 수 있을까?
 

▲기자 일동 : 여행시장은 늘 그렇듯 잠재력을 인정받는 업계 중 하나다. 아웃바운드 중심의 시장 중심에서 벗어나서 인바운드, 호텔, 국제회의, 인트라바운드, 의료관광, 테마 산업, 크루즈 등 다양한 분야로 다각화 시킬 수 있다. 여행사의 목표와 성격에 따라 미래에 얼마든지 여러 개의 사업을 추진하고 확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을 전담하는 전공자의 부재와 지나치게 얇은 인재풀이다. 물론 ‘관광학 전공자=여행업계’공식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관광학과 여행업계의 괴리는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학계에서는 현장 중심의 교육과 커리큘럼 재정립이 필요하고 여행사에서도 단순히 가산점을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업무 분리 등의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