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35호]2016-04-22 14:21

현지취재 - 도쿄(Tokyo)





“주말을 이용해 편의점을 털고 왔습니다!”
 


 
 
“도쿄는 서울하고 똑같잖아? 가서 뭐 특별히 할 거 있어?”


 
아쉽지만 첫 질문부터 틀렸다. 이제 여행자들은 더는 ‘무엇’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이나 허니문, 가족여행 같은 몇몇 고전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여행자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 철저히 개인의 욕망 해소를 위한 투자와 소비일 뿐이다.


여권에 쿠폰 찍듯 출입국 스탬프를 모으고 유명 랜드마크 앞에서 정형화된 인증샷을 찍으며 단체로 한식당을 방문하던 호시절은 끝났다. 즉 딤섬 먹으러 홍콩가고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를 위해 유럽을 찾는 것이 그저 몇몇 금수저의 철없는 치기일 뿐이라는 시선은 거둬야 한다는 말씀. 지난 3월 말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 도쿄를 여행했다. 즉흥적인 도쿄 방문의 시작은 달콤한 케이크를 원 없이 먹고 싶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것들이었고 주머니는 크게 털렸지만 진심으로 즐거웠다.
도쿄 시부야=글·사진 김문주 기자 titnews@chol.com
 
 


셀카봉 들고 랜드마크 찍는 여행은 이제 그만

대형 관광지 벗어나 편의점, 로컬숍으로 발길 몰려
 


 
김포공항에서 하네다까지는 언제나 Full


금요일 새벽 5시 35분,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김포 공항의 3층 출국장은 소음과 제각각의 스마트 폰이 쏟아내는 빛들로 반짝거렸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ANA항공 카운터 앞에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가까운 의자에 앉아 찐한 커피 한 잔으로 정신을 차렸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한 탓에 두꺼운 잠바에 모자를 푹 눌러쓴 기자만 제외하면 앞뒤에 모여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깃털처럼 가볍고 얇은 옷차림이었다.


신기하게도 입고 있는 옷과 언뜻 스치는 대화만으로 도쿄와 중국행을 구분할 수 있으니 이것도 직업병인가 싶어 잠시 우쭐했다. 6시 항공 카운터가 열리고 첫 번째로 보딩을 마쳤다. 혼자만의 여행은 근 반년 만인지라 수속을 마치고 티켓을 받자마자 기분 좋은 쿵쾅거림이 시작돼 똑바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출장에서는 쉽사리 만나지 못하는 감정이다.





김포공항에서 도쿄 하네다까지 이동 시간은 2시간. 편리하고 도심과도 가까운 탓에 개별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루트다. 하네다국제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는 모노레일, 케이큐센(지하철)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리무진이나 택시도 있지만 이용 가격이 만만치 않은 탓에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라면 전철이 제격이다. (주머니가 조금 무겁다고 해도 굳이 리무진과 택시에 돈을 쓸 필요는 없다. 안 그래도 돈 쓸데가 넘쳐나니 말이다.) 무엇보다 도쿄의 지하철역은 역사 명이나 이동 방법 등 한국어 서비스가 완벽히 구축돼 있어 상당히 편리하다.



한자 몇 개만 지우면 2호선 시청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전철역 입구에서 지하철 이용을 위해 우선 스이카 카드(SUICA CARD)를 구매했다. 스이카 카드는 우리나라의 티머니와 비슷한 개념이다. 스이카와 쌍벽을 이루는 교통카드가 바로 파스모(PASMO). 은색 바탕에 핑크빛으로 글씨가 게재돼 있어 여성 이용자들이 선호하지만 초기 구매 비용이 3,000엔으로 저렴한 편은 아니다. 두 카드 모두 충전은 1,000엔 단위부터 가능하고 보증금 500엔이 포함돼 있다. 물론 개인 취향이 있겠지만 도쿄는 데이패스 개념의 교통패스가 큰 이득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카드를 충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일본을 출국할 때까지 개봉하지 마십시오”

 
케이큐센을 타고 호텔이 위치해 있는 아사쿠사바시 역에서 하차한 뒤 호텔 리셉션에 짐을 맡겼다. 도쿄의 호텔들은 대부분 오후 3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한 탓에 2박 3일 여행이라면 첫 날에는 객실에 들어가 짐을 풀지 못하고 바로 여행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최대한 가볍게 그리고 필요한 짐만 넣어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 걷다보니 배꼽시계가 무섭게 울렸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던 지라 비행기에 타자마자 단잠에 빠져 기내식도 넘겨버린 탓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좋은 건 모든 선택을 여행자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 먹고 싶을 때 먹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어도 좋은 여행. ‘혼술’, ‘혼밥’, ‘혼여’ 중 제일은 역시 혼여일지니! 전철역까지 이동하는 와중에 길목 옆에 자리한 대형 세븐일레븐에 눈이 갔다.


도시락으로 요기라도 할까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순간적으로 베이커리에 들어왔는지 헷갈렸다. 매장 정중앙에 자리한 세븐일레븐 베이커리 코너에는 서울의 유명 카페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각종 빵과 과자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평소 1일 1빵을 지키는 기자로서는 감사할 따름.








이내 사탕 가게에 들어온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신나게 빵을 골랐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일본의 편의점은 주로 대형사 위주의 과자나 간식을 공급받는 한국의 편의점과 달리 개인업자와의 거래도 활발하며 자체 상품 출시도 잦은 편이라고. 제일 먼저 인터넷 주문도 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골드시리즈 식빵과 하얀 크림을 살포시 품고 있는 롤 케이크에 손이 갔다. 롤 케이크는 일본에서 ‘탓뿌리’ 크리무라고 불린다.


가격은 한 개에 200엔(원화 2,126원) 수준. 촉촉하고 부드러운 롤케이크 하나를 반으로 뚝 잘라 한 입에 넣고 목으로 다 넘기기 전에 이내 나머지 반도 그 자리에서 해치워버렸다. ‘맛있다!’ 롤 케이크 옆에 또 다른 인기 메뉴인 녹차 맛이 나는 크림빵도 집어들었다. 롤 케이크와 비슷한 모양인데 안에 들어간 크림은 핑크색으로 직접 먹어보니 약간 쌉싸래한 맛이 났다. ‘이것도 맛있다!’ 몇 개밖에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가격은 한 개에 186엔(패밀리마트에서는 비슷한 빵이 176엔에 판매된다.) 광화문 커피숍에서 이 정도 수준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으면 1만 원이 깨지는 것은 다반사다. 탓뿌리와 녹차크림빵, 메론빵, 미니 사이즈 팬케이크(100엔), 카스테라까지 주섬주섬 4~5개를 앉은자리에서 해치웠다. 잠깐만, 어차피 호텔 옆인데 좀 넉넉히 사다가 같이 맡겨둘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바빠졌다. 부모님 선물, 동생 선물, 회사 식구들 선물, 밤에 내가 먹을 것 까지 차고 넘칠 정도로 빵과 음료수와 과자를 장바구니에 구겨 넣었다. 흡사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 같이 보였을 정도다.



양손 가득 빵과 음료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서자 일본인 점원이 아무렇지 않게 일본어로 말을 붙이다가 못 알아듣는 척을 하자 바로 <쓰미마세>를 외친다. 그리고는 두 명이 달라붙어 바빠지기 시작한다. 하긴 편의점에서 5만 원 넘게 빵만 사는 사람은 흔치 않지. 그때만 해도 여권을 주고 받고 설명을 듣는 이 모든 과정이 면세 혜택을 위한 절차인 줄 몰랐다. 평소 여행 좀 다녀본 사람으로서도 고작 빵과 음료 구매만으로 혜택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탓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의류, 패션, 잡화 등의 비소모품은 10,000엔부터 식품, 전통과자 등의 소모품은 5,000엔부터 8% 세금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53,169.50원 수준의 규모다.) 영어와 중국어 매뉴얼은 있는데 한국어는 없는지 직원 두 명이 연신 손짓발짓을 한다. 대강 알아듣자니 텍스 프리에 대한 설명이고 일본 출국 전까지 봉지를 뜯지 말라는 얘기였다. 맙소사, 구매 품목에 생수랑 커피도 들어있는데, 오늘 밤에 당장 어째야 할지 답답해 졌다.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산 것 마냥 편의점을 나서는 두 손이 대형 쇼핑백으로 무겁다.







영수증에는 ‘일본을 출국할 때까지 개봉하지 마십시오. 또한 일본에 계신 기간 중 소비한 경우에는 소비세가 징수됩니다’라고 친절하게 게재돼 있었다. 물론 나는 그날 저녁 바로 봉투를 뜯고 물과 커피를 마셨다. 면세 혜택도 즐거웠지만 빵 몇 개를 사는데도 <아리가또>를 수십 번이나 거듭하는 일본인의 환대는 확실히 한국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쓴 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 가벼운 사실을 우리는 왜 알지 못하고 겉도는 걸까.
 



SKⅡ 30% 할인, 센카는 고작 435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신이 아니라고 했던가. 토요일 오후, 한국에서도 사람이 몰리는 피크 시간에 도쿄에서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시부야 역에 내렸다니 스스로의 무지함에 실소가 났다.



JR시부야역에 내려서 창가를 확인하니 벌써부터 출구 앞 오거리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굳이 여행자 뿐 아니라 주말을 즐기려는 현지 젊은이들도 많은 탓이었다. 신호등이 녹색의 보행자 신호로 바뀜과 동시에 엄청난 인파가 동시에 다른 방면에서 길을 건너는 모습은 가히 자연유산 못지 않은 절경이다. 시부야는 2030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유명 쇼핑몰과 상점들로 유명하다. 역에서 건너 시선을 돌리면 바로 시부야 관광의 출밤점이라 할 수 있는 Q프런트와 시부야109 백화점이 보이는데 이 두 건물을 사이로 골목마다 갈라지는 줄기가 워낙 많다. 명동 뒷골목이 몇 개나 더 이어져 있다고나 할까. 서둘러 골목 구경을 마치고 몇 개의 드럭스토어를 눈으로 흩었다.







모든 매장 입구 앞에는 붉은 글씨의 Tax Free가 게재돼 있고 간단한 한국어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아 보이는 한 가게에 들려서 동전 파스, 샤론 파스, 몇 개의 화장품과 비타민을 잔뜩 사고 나가려는데 익숙하지 않은 지하 건물로 단체 관광객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이드)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지병인지라 기자도 슬금슬금 밑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매장이 나오는게 아닌가.


SKⅡ는 시중보다 30% 저렴한 가격에 구매 가능하고(단 낱개 구매는 불가능하다. 특정 금액 이상으로 사야한다. 가게에 따라 자체적인 묶은 상품을 준비한 곳도 있었다) 생크림 세안제로 유명한 시세이도 센카가 무한대로 깔려 있었다. 센카(퍼펙트 휩 폼 )의 경우 기본형인 120g이 한국에서는 최저 6,200원에서 8,400원 수준. 2개를 묶은 대용량은 14,800원이다. 기자가 찾았던 당시 도쿄에서는 같은 용량의 가격이 435엔(한국 돈 4,623원)으로 훨씬 저렴해 다량으로 구매를 할 수 있었다.
 
 





▲도쿄 유명 쇼핑몰


비너스 포트(Venus Fort) : 신주쿠, 시부야와 함께 도쿄 3대 관광지라고 불리는 오다이바에 자리한 대형 쇼핑몰. 지난 2009년 12월 새롭게 문을 열였으며 몇 년 전과 달리 중국관광객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비너스 포트는 세 가지 테마로 각 층이 구성돼 있다. 1층은 패밀리 2층은 명품관(그랜드) 3층은 아울렛이다.



특히 2층 비너스 그랜드는 중세 유럽 거리를 재현한 인테리어와 분수대로 여성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자라, 버버리 같은 유명 브랜드도 만날 수 있다. 3층에는 50여 개의 아울렛이 들어서있다. 저렴한 가격의 레스토랑과 카페테리아도 많아 가족단위 방문객들의 비중이 높다. 비너스 포트에서 나와서 바로 반대편으로 가면 그 유명한 오다이바 인공관람차에 탑승할 수 있다.
(유리카모메 아오미역 출구에서 왼쪽으로 도보 1분, www.venusfort.co.jp)
 


다이버 시티 도쿄 플라자(Diver City Tokyo Plaza) : 오다이바의 새로운 복합 쇼핑몰이며 1층 앞에 자리해 있는 대형 건담 모양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쇼핑몰과 달리 젊은 취향의 브랜드가 많이 입점해 있다. 총 7층 건물에 층별 면적이 널찍하며 인기 레스토랑과 카페테리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한국인들의 명품 스팟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다이바역 1번 출구 www.divercity-tokyo.com )
 


도쿄핸즈(Tokyo Hands) :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생활 잡화 전문 매장이다. 다양한 생활용품과 함께 아이디어 상품, 문구, 의류, 가방, 기념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매장 외에도 커피숍과 체험 장소, 휴식 공간이 함께 모여있는 복합몰이다. 각 매장에 <일본에서 한국인 선물로 가장 좋은 XX>이라는 카피가 한국어로 적혀 있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시부야점의 경우 매장 전체가 넓고 사람도 많은 반면 엘리베이터 시설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참고로 시부야점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인 요시다 가방을 만날 수도 있다. (shibuya.tokyu-hands.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