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935호]2016-04-22 14:25

심층기획<동상이몽3> 회식의 종말




여행업계 Talk 까놓고 ‘회식’을 말하다
 

회식(會食)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모임을 일컫는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회식도 그럴까.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먹고 죽자던’ 회식문화는 개선되곤 있지만 다수의 직장인들은 여전히 회식을 會食이 아닌 回食(먹으면 곧 토한다는 뜻)으로 여긴다.

조직을 단합하고 서로 독려하며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불편한 감정들을 씻어내 더욱 친밀해지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 회식. 회식이 언제부터 본래의 취지를 잃고 직장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돼 버렸을까.

워크넷이 지난 2013년 직장인 3,3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회식문화 관련 설문조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직장인들의 회식 형태는 여전히 음주 회식(67.32%)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음주 위주의 술자리 회식을 가장 피하고 싶은 회식이라고 답했다. 이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결과는 대한민국 회식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충분하다. 기대하는 회식과 실제 회식 간의 차이가 너무도 극명하지 않은가.

때문에 회식을 바라보는 직장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펼친 ‘회식’ 관련 다양한 설문조사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인쿠르트 회원 456명을 대상으로 ‘회사 복리후생 중 사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에서 27%의 응답자가 ‘술자리 회식’을 꼽았다. 즉 직장인 4명 중 1명은 회식을 꺼리며 회식은 직장인들의 회사 복리후생 기피대상 1위라는 불명예를 입었다.

인크루트가 같은 해 자사 회원 3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회식 스트레스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10명 중 무려 8명이나 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회식이 스트레스인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회식에서 ‘불편한 사람들과 이야기(30%)’를 나누거나 ‘늦게 끝나는(30%)’ 것들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어 술 권하는 문화(17%)>노래 부르기(10%)>몸 건강(8%)>성희롱(3%) 등의 회식문화가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문득 궁금해지지 않나. 전체 회식, 팀별 회식, 상품 판매 연합여행사 회식, 팸투어 뒤풀이 등등 회식이 너무도 잦은 여행업계가 ‘회식’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말이다. ‘회식’이라는 먹잇감을 놓고 여행업계 종사자들의 거침없는 속내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회식’에 대한 업계 종사자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글=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사진=여행정보신문 DB

 
 
 

사례 1 “회식의 목적, 그것이 알고 싶다”

회식은 왜 할까? 정형화된 대답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팀원 간 유대감 형성 △스트레스 해소 △업무공감대 형성 △단합 등등. 그렇다면 회식을 하고 나서 우리는 이 목적들을 달성했는가. 누군가는 선뜻 답하기 곤란할 테고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첫 번째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주제는 회식하는 이유다.
 

# A 전문사 새내기 1년차 女 : 회식하는 이유? 특히 급작스럽게 회식을 하는 이유는 결국 집에 가봐야 재미있는 일도 없고 일상이 무료한 사오십 대 상사들이 젊은 직원들 붙들고 이야기나 나눠볼까 해서 회식이 생기는 것 아닐까. 조직의 단합 내지는 직원들 사기독려 차원이라고 보기엔 회식 다음 날 숙취와 피로는 오히려 업무능률 저하의 원인이 된다.
 

# B 항공GSA 40대 과장 男 : 최근에 뉴스를 보니까 복학생 선배가 신입생 후배들 점심 사주는데 100만 원 넘게 썼다는 기사를 접한 적 있다. 상사 입장에선 그런 거다. 젊은 후배들한테 1년에 한 번도 술을 안 사면 후배 안 챙기는 사람, 리더십 없는 상사로 찍히기 십상이다. 회식의 목적? 해야 하니까 하는 거다. 상사라고 다 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회사 정치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 C OTA 40대 차장 女 :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으면 회식을 줄인다. 회식 싫다고 노래 부르다가도 회식을 너무 안 했다 싶으면 뒤에서 쑥덕대더라. 중간급 위치에 서보니 알겠다. 회식은 회사도 임원도 중간급도 막내도 모두가 불편하다. 그럼에도 회식을 하는 건 결국은 ‘더 열심히 하자’ 아닐까. 회식도 회사가 직원들에게 베푸는 복리후생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 D 패키지사 50대 부장 男 : 뻔한 걸 왜 묻나. 회사는 조직이다. 회식을 통해 소속감, 유대감을 강화하는 게 회식의 목적이다. 서로 자기 일만 다 끝났다고 가면 그게 회사인가. 1인 기업이지. 업무하면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은 개선됐으면 좋겠는지 혹은 누군가 이번에 이렇게 하니까 좋더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더 조직이 건강하게 발전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 E 패키지사 30대 대리 男 : 업무시간에는 일만 하니까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 회식 하는 것 아닐까. 같은 팀이 아니고 서로 협업하는 팀도 아니면 게다가 자리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1년에 1~2번도 인사조차 안 하는 직원들이 있다. 워크숍이나 전체회식을 하게 되면 어찌됐든 서로 눈인사라도 한 번 더 하게 되고 때로는 몰랐던 직원을 알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회식이 나쁜것은 아니다. 목적을 잃은 회식문화가 문제지.
 
 


사례 2 “강권하는 회식문화, 눈치 보이는 회식자리”

회사라는 거대 조직 안에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직장인들의 회식의 목적은 다양하다. 취재결과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여행업계 종사자 다수는 회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회식은 그럼에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누구 말마따나 회식은 잘못이 없다. 회식문화가 잘못됐을 뿐.

워크넷이 지난 2013년 직장인 3,302명에게 회식문화가 불만족스러운 이유를 물었다.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27.4%)가 싫다는 응답이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예고 없이 갑자기 진행될 때가 많다(21.6%)는 응답이 2위를 기록했다. 이어 회식 시간이 너무 길다(11.7%)는 응답과 회식 때도 계속되는 업무 이야기에 지친다(9.4%)는 응답이 각각 3,4위를 차지했다.

 

# F 패키지사 사원 女 : 전체회식이나 서로 마음 맞는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회식하는 건 큰 부담이 안 된다. 전체회식인 경우 막내들은 그냥 수저 놓고 물 컵에 따르는 등 자리 세팅하고 고기만 열심히 구우면 된다. 어느 자리에 앉느냐가 중요하긴 한데 대부분 여직원끼리 뭉치게 되더라. 아무튼 전체회식이나 친한 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선 술에 대한 부담이 없다.

문제는 팀 회식이다. 매일 마주치는 상사가 “원샷”을 외치는데 거기서 안 마실 배짱 좋은 직원이 얼마나 될까. 정말 미치겠는 게 매번 “짠”할 때마다 원샷이다. 아니 꼭 술을 같이 마실 필요가 있나.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시면 되지. 술 안 마셔도 회식자리에 앉아 있고 얘기 나누고 다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술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 G 패키지사 과장 男 : 가끔 하는 부서회식은 좋다. 공짜로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그런데 칭찬도 계속 들으면 듣기 싫다고 회식도 너무 잦으면 피곤하고 짜증난다. 업무 끝나고 나면 내 시간도 있어야 하는데 회식이 일주일에 서너 번씩 되면 그건 회식이 아니라 야근이다.

그리고 회식하자고 미리 말해주면 안 되나. 직원들 스케줄이야 어찌됐든 “오늘 회식”이라고 예고없이 말하면 열외 없이 다 가야 한다. 회식하기 제일 싫은 날이 있다. 상사한테 깨지고 업무시간 내내 눈치 보고 숨죽이면서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급 회식하자고 할 때.

그럴 땐 회식자리에서도 죽어라 깨지는 거다.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저렇게 했어야지” 들었던 말을 또 듣는 거. 생각만 해도 싫다.
 

# H OTA 과장 女 : 워킹맘들에겐 잦은 회식은 정말이지 쥐약이다. 청소년도 아니고 이제 막 갓난아기를 집에 떼어 놓고 왔을 땐 더더욱! 아이 때문에 회식을 빠지는 게 얼마나 눈치 보이는지 모른다.

솔직히 한 편으론 서운하고 속상하다. 상사들도 다 아이 키우는데 그러면 잘 알지 않나. 알아줄 법도 한데 도리어 그러니까 워킹맘은 안 된다는 식으로 몰고 가면 정말 눈물 난다.

업무적으로 피해 준 것도 아닌데. 회식이라도 빨리 끝내던가. 애가 눈에 밟혀도 꾹 참고 회식 가서 1차만 하고 가려면 회식 안 가느니만 못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 I 전문사 사원 男 : 사회 초년생들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바이블이 있다. 회식자리에서 상사에게 예쁨 받는 법이다. 1. 컵에 물을 따라서 자리마다 돌리고 수저, 물수건을 세팅한다. 자리 세팅은 높은 계급 순으로 하며 막내는 필시 삼겹살을 굽고 고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2. 절대 회식에 빠지지 말라. 2차, 3차, 끝까지 가라.

3. 상사가 노래 등의 개인기를 시키면 절대 빼지 말고 하라. 4. 술이 들어갔다고 해서 절대 본심을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는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다. 마지막 꿀팁은 눈에 띌 듯 띄지 않는 최적의 사각지대에 자리를 잡는 거다.
 


# J 패키지사 부장 男 : 윗사람도 회식이 불편한 건 매한가지다. 듣기 싫어하는 건 알지만 우리 땐 정말 안 그랬다. 위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었다. 뭐, 그게 맞는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 애들은 정말 너무 개인주의가 심하다.


한 번은 홈쇼핑 판매다 뭐다 주말이고 밤이고 구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맛있는 걸 먹이고 들여보내야겠다 싶더라. 그래서 가볍게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했더니 나 참. 다들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

그 이후론 선뜻 먼저 밥 먹자거나 가볍게 술 한 잔하며 스트레스 풀자고 하기가 어렵다. 니들만 눈치 보는 거 아냐. 나도 너희 눈치 봐.
 

 

 

사례3 “이번 회식은 색다르게 공연 관람 콜?”

세대가 교체되면서 직장 내 회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식의 회식문화는 한물갔다. 여기에 먹고 마시는 기존의 형태에서 탈피해 공연관람, 맛집탐방, 볼링·실내 암벽 등의 레포츠까지 다양한 회식 형태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업계 특성상 여성 종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행업계의 회식 형태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 K OTA 대리 男 : 다른 업종에서 근무할 때는 1차도 술, 2차도 술, 3차도 술 아니면 노래방이었다. 그런데 여행업계는 달라서 깜짝 놀랐다. 여직원이 상대적으로 많다보니 술도 그렇게까지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다. 1차에서 가볍게 고기 먹고 술 마시고 끝. 더러 2차를 가기도 하는데 전체회식에서는 2차도 가볍게 술을 마시지만 팀 회식이나 소규모 회식인 경우는 무조건 2차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수다 떨다가 헤어진다.
 

# L OTA 주임 女 : 다른 팀은 모르겠는데 내가 속한 부서는 팀장님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술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중요시한다. ‘와! 회식이다’까지는 아니지만 남들에 비하면 회식이 즐겁다. 팀원 전체가 회식 전날부터 ‘이번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하고 고민한다.

점심식사 시간에 괜찮은 맛집들을 얘기하고 정하는데 맛있는 걸 먹어서 좋기도 하지만 회식 장소를 정하는데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니까 더 좋은 것 같더라. 그리고 부담도 없다. 맛있는 음식 먹고 디저트 먹으면 회식 끝이다. 그러면 10시도 안 돼서 집에 도착하니 다음 날 출근에도 지장이 없다.
 


# M GSA 과장 女 : 당시 사업차 며칠을 아이디어 회의로 회사 분위기가 처져 있었는데 기분 전환도 하고 머리도 식힐 겸 회식을 하자고 했다. ‘이거다’하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기분 좋게 술 마실 분위기도 아니고 부담도 있었기 때문에 공연이나 보자는 식으로 이차저차해서 의도치 않게 문화회식을 하게 됐다. 반응이 꽤 좋았다. 푸짐하게 음식 먹고 거하게 술 마시는 것보다 반응들이 더 좋더라.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이디어 회의도 얼마 후 성과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