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1027호]2018-04-27 07:02

여행 방송 및 예능프로그램 분석 - 1

홈쇼핑 보다 재밌다 TV로 골라 떠나는 세계 여행
 
 
해외여행 인기 콘텐츠로 꼽혀, 프로그램 우후죽순 늘어나

항공사, 관광청 등 제작 지원 버겁다 토로, 모객 효과 글쎄

상대적 박탈감, 연예인 행실 따라 프로그램 인기 좌지우지
 
 
“직장인 A씨는 최근 가족여행지로 사이판을 선택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지난 주말 방송을 통해 방영됐던 베트남에 더욱 마음이 끌린 것. TV를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저렴한 현지 물가와 먹거리들, 바다와 주변 관광지 그리고 무엇보다 출연한 연예인들이 머물었던 빌라 형 숙소의 아름다운 모습에 온통 마음을 뺏긴 그녀는 원래 예약했던 항공권을 취소하고 곧바로 베트남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물론 숙소가 생각 외로 비쌌다는 점만 빼면 A씨는 아직까지는 만족 상태다.”
 
VS
 
“여행사에 근무 중인 B씨는 최근 불쾌한 경험을 했다. 홈쇼핑을 통해 사이판 상품을 예약하고 다녀왔던 고객이 지나친 요구와 컴플레인을 한 것. 항공이나 호텔 혹은 현지 일정에 대한 문제라면 얼마든지 사과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고객의 컴플레인은 터무니없는 개인 실수이자 불만이었다. 바로 TV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식당을 그대로 찾아갔더니, 서비스가 형편없고 음식도 맛이 없었다며 이러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는 것. 연예인들이 아니라 음식을 일부러 적게 주는 것이냐며 생떼를 쓰는 고객에게 B씨는 별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TV만 틀면 쏟아지는 여행 프로그램
 
바야흐로 여행 예능 전성시대다. ‘여행’이 빠지는 경우가 없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과 종편을 더하면 어림잡아 10개가 넘는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인기 관광지, 사람들이 몰리는 랜드마크, 쉽게 갈 수 없는 지구 끝 마을까지…….

여행지의 역사나 생활, 문화, 전통 등을 담담하게 소개하는 클래식한 프로그램 외에도 여행을 주제로 누가 더 즐겁게 일정을 보냈는지 경쟁 하고, 가성비 높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지 방법을 고민하며, 액티비티 위주의 미션을 소화하면서 역으로 여행지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 유명 관광지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내 방을 공유하는 스타들까지 나온다. 비단 여행 뿐 아니라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나 먹방 프로그램에서도 여행은 단골 코스다. 출연진이 휴가를 떠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본고장인 해외를 찾는다.
 
휴양지에 가서 미팅을 하고 어린 아이들끼리 독립을 체험한다는 명분 아래 배낭 하나 들고 유럽의 낯선 땅에 떨어진다. 사실 유사 프로그램은 너무 많아서 소개를 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 지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힐링의 성지를 찾고 새로운 결심에 앞서 해외 명산을 오르는 등 이제 여행은 방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 됐다. 모두 제각각 풀어내는 방향과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된 키워드는 결국 여행의 즐거움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와 술을 곁들이고 좋은 관광지를 구경하며 조금의 실수가 있다 한 들 유쾌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수많은 여행 프로그램들은 정말 여행업계에 도움을 주고 있을까? 포화 상태라 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여행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선호도 높아
 
재밌는 자료가 있다. 실제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즉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상대적 빈곤을 이유로 과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 TV를 통해 방송되는 여행에 대해서는 동경과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가 지난 2015년,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의 시청경험이 있는 만 19세~5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6.2%가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이 여가생활의 필요성을 알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바쁜 일상생활에 치여 이렇다 할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이 일종의 자극제가 된다는 것. 10명 중 7명(69.7%)이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한번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응답했으며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의견도 64%에 달했다. 젊은 층일수록 한번 따라 해보고 싶고(20대 77%, 30대 72.4%, 40대 68%, 50대 61.2%), 그렇게 살고 싶다(20대 67%, 30대 68.6%, 40대 62.4%, 50대 58%)는 바람이 강했다.
 


다양한 종류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중 시청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의 3위를 여행(44.6%)이 차지한 것은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1위와 2위는 요리(57.9%, 중복응답)와 놀이(51.1%) 순. 이 밖에 육아/가족(38.2%), 일상생활체험(33.7%), 오디션(33.3%), 극한체험(22.1%), 연애/결혼(9.9%) 관련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젊은 층에 비해 중장년층이 더욱 여행(20대 34.2%, 30대 40%, 40대 50.8%, 50대 53.2%)과 극한체험(20대 11.6%, 30대 16.8%, 40대 24.6%, 50대 35.4%) 프로그램을 상대적으로 많이 선호한다는 특징도 주목할 만 하다.
 

 

여행과 극한체험 프로그램의 인기에 대해서는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의견(여행 50%, 극한체험 49.6%, 중복응답)이 공통적으로 많았다. 다만 여행프로그램은 삶에 지친 시청자에게 활력을 제공하고(46.5%), 동경하는 모습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33.6%)는 시각 또한 많아, 여행 자체가 주는 매력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상품 구매에 결정적인 키가 있는 중장년층이 TV를 통해 접하는 여행을 본인도 체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는 것은 여행업계의 상품 타깃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유여행 혹은 개별여행이 시장의 대세로 등장하면서 많은 여행사들이 젊은 고객층만을 상대로 마케팅 및 광고에 집중하고 있지만, 오히려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계층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여행 프로그램이 방송됐거나 제작 지원에 동참한다면 이제는 범위를 넓혀 중장년층을 위한 여행지 선정과 프로모션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이는 TV 채널의 연령층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과도 일맥 상통한다.
 
 
▲현실과의 괴리, 제작 지원은 신중해야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직접 떠난 여행을 모든 소비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대강의 스토리와 대본이 정해져 있는 방송 프로그램과 달리 개인이 떠난 여행은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일정이 변할 수 있기 때문. 연예인들이 먹는 음식과 똑같은 수준을 요구하거나 TV 화면에 비해 볼 것이 없다는 불만은 오히려 애교 축에 속한다. 분명 낮은 가격의 호텔 객실을 구매하고도 연예인이 사용한 객실로 업그레이드를 시켜 달라고 하거나 일정에 정해진 식당을 벗어나 TV에 나온 맛 집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고객들도 여럿이다. 여행라로써는 프로그램 자체가 홍보가 돼지만 제대로 현지 사정을 모르는 고객들이 얕은 지식을 앞세워 행사 진행을 방해하거나 가이드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아 솔직히 피곤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사 입장에서는 우선 방송에 노출된 목적지 위주로 홍보를 할 수 밖에 없고 비슷한 상품을 묶어 기획전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인기 프로그램들의 추이를 살피는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고.

상대적 박탈감도 문제다. 동 조사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TV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는 현실에 한숨이 나올 때(41.2%)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다른 연령에 비해 30대와 40대가 자신의 현실과 비교되는 방송내용에 한숨 쉬거나(30대 45.2%, 40대 43.8%), 박탈감을 느끼는(30대 39%, 40대 38.2%) 경향이 보다 강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외주제작사와 방송국의 제작 지원 요청도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사 대표는 “TV 뿐 아니라 온라인과 1인 방송국, 미디어 플랫폼까지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채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후원을 요구하는 제작사들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부담이 된다”며 “항공 티켓을 넘어서 현지 촬영 지원을 위한 스텝과 비자 간소화 문제 등이 겹쳐지면 솔직히 감당이 안 된다. 게다가 제대로 된 프로그램 이름이나 대본도 없는 상태에서 우선 후원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작가들도 많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지원 규모를 일정 수준의 금액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못을 박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 효과가 급감하는 것도 여행업계에 불리한 요소다. 대표적인 예로 김생민이 출연했던 짠내투어는 짠돌이 김생민의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면서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 성추행 문제로 그가 하차하면서 프로그램의 원동력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짠내투어를 후원하거나 이를 활용해 마케팅을 하려 했던 업체들 또한 계획이 전부 어그러지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이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구성이 아무리 좋아도 출연진들의 태도 하나에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한 관계자는 “상투적일 수 있지만 더는 방송국 이름이나 출연진들의 명성만 보고 앞 다퉈 제작을 지원하는 경우는 사라져야 한다”며 “모든 유행에 끝이 있듯이 여행 예능 역시 조만간 지금의 인기를 마감할 것이다. 한동안 인긴를 끌었던 먹방 프로그램이 대부분 사라지고 셰프들의 방송 출연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관찰 예능 역시 언젠가 지루함을 느끼는 대중들이 많아지면 서서히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스토리나 주제 의식이 분명하다면 종료 후에도 끊임없이 방송 화면과 콘텐츠가 온라인에서 유통되면서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여행처럼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 방송가에서는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다른 장치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본질에 어긋난다. 제대로 홍보하고 싶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혹은 PR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담고 최대한 포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부 titnews@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