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744호]2012-02-27 13:53

[칼럼] 남기수의 世情虛實

포장마차 바가지 때문에 외래 관광객 쫓을 순 없다

‘뾰족한 수 없다’는 것은 관련 기관 직무 유기

IMF 전 일이다. 무더위가 피크인 휴가철. 동해안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속초·강릉으로 가는 도로엔 자동차로 넘쳤다. 수도권 인구 약 60%가 여름 피서지로는 속초 강릉 지역을 꼽는다. 이는 타 지역에 비해 바닷물이 맑고 거리도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속초의 경우 경관 좋은 설악산이 곁에 있고, 콘도미니엄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어 더하다. 또 현지에서 어획한 선도 좋은 생선 맛을 즐기는 것도 피서의 백미다. 그런데 현지의 사정은 생각처럼 그리 녹녹치 않았다.

그 무렵 속초에서다. 서울서 온 피서 가족이 횟집에 들려 오징어 회를 시켰다. 종업원이 가져 온 회는 쟁반에 가득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회 밑에 탕면 같은 흰 조형물이 수북했고, 그 위에 얇게 썬 회를 덮어 놓아 분량이 많게 보였다. 오징어 세 마리로 만든 회와 소주 1병의 가격은 4만원. 그 지방 사람에게는 횟감 오징어 한 마리에 2천원 꼴에 팔았다. 바가지도 보통 바가지가 아니었다. 피서객은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한 피서 길에 기분을 망칠까 싶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낸다. 그러나 횟집 쪽의 생각은 다르다. 메뚜기도 오뉴월 한철이라 이럴 때 타지에서 온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워서라도 돈을 벌어야 된다는 거다. 피서객의 약점을 꿰뚫고 있다는 얘기다.

그 후 IMF가 닥쳤다. 외지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방 경제도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외지 관광객들이 먹을 것을 다 준비 해 오는 바람에 쓰레기와 배설물만 남기고 간다고 이곳 주민들은 관광객을 원망했다. 반대로 관광객의 입장에선 바가지요금을 용인하는 봉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사정을 안 지방자치단체는 오랜 기간 관계 직원을 동원해 상인들을 방문 설득했다. 그 때 관할 시장은 “바가지요금이 관광객을 쫓아내고 있다. 이 지방 경제를 살리려면 바가지요금을 없애고 바른 거래를 해야 한다” 고 호소했다. 얼마 전에 만난 속초시 관계자는 “이제 겨우 바른 거래가 정착 되는 것 같다. 그 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국내외 공히 마찬가지다.

지난 9일 밤, 남대문 시장 포장마차에서다. 모처럼 한국에 온 일본인 관광객 나카무라 하루(32)씨가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음식 이름만 있고 가격이 표기 되지 않은 메뉴판을 보고 약간은 불안 했지만 김치전 한 장에다 맥주 두병을 주문했다. 한식 한류에서 듣고 본 한국 김치전을 맛보고 싶어서였다. 청구된 금액은 무려 5만원, 인근 포장마차에서 한국 손님에겐 김치전 1만원, 맥주 1병에 3천원에 팔고 있었다. 그는 말로 따질 수 가 없어 그냥 지불하고 나왔지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다시는 한국을 찾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서울시 관광센터에서 외래 관광객에게 나누어 주는 관광안내 책자 ‘러프가이드 서울’ 이나 서울영상위원회가 발간한 ‘영화가 사랑한 서울 촬영지 100선’에도 남대문 시장, 광장시장 등 거리 음식점을 외국인이 많이 찾는 ‘맛 집’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격을 표시 하지 않고 음식을 제공한 뒤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요구하는 예가 비일비재 하다는 거다. 위의 내용은 지난 2월 15일자 모 일간지 1면에 사진과 함께 크게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 바가지 내용보다 더 참담한 것이 있다. 국가 관광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관광공사의 관계자가 “상당수의 포장마차가 관할관청(구청 등)에 등록을 하지 않아 이를 시정하기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라는 거다. 물론 바가지 상혼도 큰 문제다. 하지만 국가 발전을 해하는 자들을 제재(制裁)할 수 있는 곳은 국가 기관이란 점에서 안타까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관광공사 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 관할구청, 관광단체 등 국가 이익을 해하는 자들을 주야로 감독해야 할 기관에서 “뾰족한 수 가 없다”는 것은 분명 직무유기다. 공무원이나 공공 기관 구성원은 국가의 녹을 먹는 자리인데 정작 필요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자기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올해 외래 관광객 유치 목표가 1,100만 명이다. 정부는 멋, 맛, 흥 등 6개 분야에서 355억 원의 예산을 확보한 ‘한류 3.0’을 발표하고 관·민이 힘을 합쳐 한류 관광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외래 관광객 유치에 역행하는 행위를 어떤 이유이든 간에 단속을 포기한다면 국가 경제 발전의 저해는 물론 관광대국으로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포장마차의 바가지요금 때문에 외래 관광객을 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