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88호]2015-04-24 14:57

[창간 기념 특집호 특별 인터뷰3] 전영광(이니그마) - 여행사진작가


“내 프레임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필명인 ‘이니그마’로 더욱 잘 알려진 전영광 씨는 수많은 여행 사진작가 중에서도 ‘감성여행’이라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장르를 구축한 프리랜서 여행사진작가다. 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사진을 처음 대면했을 때 구도나 색감보다 사진의 분위기와 피사체의 감정이 먼저 전달되기 때문이다. 감히 그의 작품을 정의해 보자면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진’이랄까. 단순히 여행지를 예쁘게 잘 담아내서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프레임 속에 표현된 여행지에 대한 애정이 유난히 돋보였기 때문이다.

부연설명 없이 사진 한 장만으로 메시지를 던질 줄 아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생각보다 진중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난 사진작가였다. 거두절미하고 그와 진행된 인터뷰를 가감 없이 공개하겠다.

글·사진=강다영 기자 titnews@chol.com
 
 
특유의 감성사진 비법은 ‘One step close up’

사진만으로 이야기 전달할 수 있는 작가되고 싶어
 
 
-‘이니그마의 세계여행’ 블로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또 필명 ‘이니그마’에 담긴 뜻은.
▲처음 시작은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보고 싶어서 올리게 됐다. 사실 폴더에만 넣어놓으면 잘 안 보게 되지 않나. 블로그에 올리려니까 후 보정에도 신경 쓰고 사진에 어울리는 글도 쓰게 됐다. 점점 블로그 방문자 수가 늘면서는 조금 더 읽기 편하게 글을 쓰고 조금 더 보기 좋게 사진을 올렸다.

그러는 중에 내가 활동하던 포털(네이커) 메인에 내 게시물이 소개됐다. 그 때 당시 네이버 메인에 한 번 노출되면 하루에 10만 명이 넘게 들어왔다. 그 이후로도 한 달에 한 번씩 네이버 메인에 걸렸던 것 같다. 그 일을 계기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니그마는 수수께끼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나를 좀 궁금하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 뭐랄까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자유롭게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지인들이 알고 있는 전영광이 아닌 사진 찍고 글 쓰는 이니그마로 마음껏 표현하고 싶었다.
 
-프리랜서로서 입지를 다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전략이다. 작가,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그 것 뿐인 것 같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 (-대체 불가능한 당신만의 재능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인물사진은 괜찮게 찍는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다(웃음).

사실 나는 내가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잘 찍은 사진은 매우 이례적이거나 특별한 사진이다. 특히나 남자들이 그런 사진을 좋아하고 그런 사진을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남들이 일반적으로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이게 맞는 방향인가?’ 하고 늘 의심 했다.

블로그 피드백을 통해 ‘내가 이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찍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구나’하는 공감을 얻으면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때에도 그 해답은 사람들이 주는 것 같다.
 
-여태껏 다수의 매거진과 사진작업으로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니그마하면 ‘여행사진’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건가. 여행을 좋아하는 건가.
▲스스로에게도 굉장히 많이 물어봤다. 다행이 사진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을 좋아하는 것의 90%는 겹친다. 상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굳이 하나의 예를 들자면 여행지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곧 노을 사진을 찍으러 가야할 경우,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행을 만끽하느냐, 사진을 찍으러 그 친구들과 헤어지느냐. 이럴 때 여행자와 사진가가 충돌한다.

그런데 결론을 내리자면 여행 55% 사진 45% 정도? 여행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사진은 수단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진만이 목적인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 떠났던 여행은 없었다.
 
-‘감성여행사진’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정의를 내리자면.
▲우리가 어떤 풍경을 봤을 때 그 풍경을 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어떤 감정상태이냐에 따라 똑같은 풍경도 달리 보일 수 있다. 그러면 객관적인 사진이 아니라 주관적인 사진이고 내 마음이 필터링 된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슬픔의 필터일 수도 있고 핑크빛 필터일 수도 있다.

똑같은 파리를 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 파리는 모든 것에 하트가 박혀 보일 것이다. 감성여행사진은 내 감정이 담겨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는 사진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을 때의 감정이 가둬진 사진이 감성여행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죽기 전에 꼭 찍고 싶은 ‘사진 버킷리스트’가 있는가.
▲나는 버킷리스트가 없다. 죽기 전이 아니라 지금 하면 되지 않은가.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단지 행복한 사람들을 더 많이 찍고 싶다는 것. 내가 여행지에서 찍는 사진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 찍기 전 내 모델에 이런 말을 한다. “당신에게 의미가 없는 사진이라면 나에게도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내가 찍은 피사체한테도 그 사진이 뜻 깊은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사진가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내가 찍는 사진은 대부분이 인물사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진다. 결국은 사진가의 태도와 연결되는 지점인데 내가 그 사람을,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실례합니다’하고 들어가지만 결국에는 그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 “이 풍경과 어울리는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찍었어요”하고 내가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면 대부분은 행복한 미소를 띤다.
 
“여행가 그리고 글쟁이 전영광”

-‘이니그마의 세계여행’ 구독자로써 블로그의 진짜 묘미는 감성 충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이 좋아요’라는 칭찬을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사진은 내가 제일 잘해야 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가 글이니까. 이를테면 예쁜 사람한테 ‘예쁘다’보다는 ‘예쁜데 요리도 잘 하네요’가 더 기분 좋은 것처럼. 글에 대한 칭찬을 좋아하는 만큼 노력도 많이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나만의 방법도 있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면서 타이핑을 친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 하듯 다시 읽어본다.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으면 읽힐 때까지 고친다. 결국 잘 쓴 글은 잘 읽히는 글이다. 앞으로도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여행을 굉장히 많이, 오래 다니는데 현지에서 느낀 감정을 어떻게 기억하고 글로 옮기나.
▲나는 현지에서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는데 기억을 위한 사진이 있고 작품으로서 찍는 사진이 있다. 예를 들면 글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여행 중간 과정의 사진을 많이 찍어 둔다. 예전에 다녀온 여행사진을 다시 볼 때도 있는데 그 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그 날의 여행이 어제처럼 느껴진다. 또 다른 방법은 그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공감각으로 기억이 된다.

시각과 후각이 따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서 기억되기 때문에 후각이 떠오르면 시각이 기억나고 청각이 떠오르면 시각도 떠오른다. 가끔은 매연을 맡다가 필리핀의 어느 거리가 떠오른 적도 있다. 사진이나 음악으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까 말한 것처럼 모니터와의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한다(웃음).
 
“이 세상 모든 감성여행자들에게”

-작가만의 여행비법은.
▲여행을 잘하는 방법이랑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비슷한 것 같다. 한 걸음 더 가까이, ‘one step close up’ 하는 것. 멀리서 3인칭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 사람들을 이해해야 그 풍경들도 아름다워 보인다. 결국 여행지의 풍경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건축물만 보고 오는 여행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은 이것을 만들었고 여기에서 살까’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보고, 만나고, 생각을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어떤 음식은 ‘대체 이게 무슨 맛이지?’하는 것이 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먹고 누군가는 그것을 맛있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걸 생각하고 다시 반복적으로 먹다보면 그 매력을 알게 된다.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국에는 여행을 잘하는 법, 사진을 잘 찍는 법인 것 같다. 사진 역시 카메라를 막 들이미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 먼저 가까워지는 것. 그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감성여행 사진작가’로써 행복한 점, 반대로 힘든 점이 있다면.
▲행복한 점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이 조금 더 보인다. 단점은 여행과 사진이 일이 돼버려서 여행이 나에게 더 이상 여행이지 않은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똑같은 고민을 한다.

일이 떠오르는 순간 내가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일하는 과정이 된다. 심지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더라도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을 위해 나의 여행을 잃어버린 셈이다.
 
-끝으로 여행사진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무 종사자로써 조언을 해주자면.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돼라. 왜 나여야만 하는지를 고민해라. 가치라는 것은 질이나 수준이 아니라 희소성이다. 희소성 있는 것이 진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