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사스크랩 [제853호]2014-07-18 09:51

사이판(上) 화려하진 않아도 아름답다, 사이판


 

청정자연 속 몸도 마음도 ‘힐링(Healing)’


글 싣는 순서

●사이판<上>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

사이판<下>익사이팅(Exciting)사이판을 느끼다


한동안 한국인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나오던 단어가 있었다. 최근 사용빈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심심찮게 들려오는 단어,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힐링’이다. 때문에 여행업계도 ‘힐링’을 필두로 한 마케팅이 넘쳐났다.

‘힐링 여행상품’, ‘힐링 여행지’ 등등. ‘힐링’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요사이 살짝 빗겨가긴 했지만 여전히 ‘힐링’이 필요한 대한민국이다. 빠른 변화를 좇아 지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들에게 필요한 뜬구름 같은 ‘힐링’.

고군분투 중인 당신들에게 ‘천천히’의 미학을 알려주고 싶다. 자타가 인정하는 진정한 힐링 여행지, 사이판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자.

취재협조 및 문의=마리아나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7-3252 / www.mymarianas.co.kr)
사이판=권초롱 기자 titnews@chol.com


 


5월에 사이판을 찾으면 불꽃나무를 볼 수 있다.


자동차로 40분이면 전국 일주가 가능하단다. 에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묻는 당신. 고속도로를 이용 하냐고? “No! 드라이빙하면 국도 아닙니까”로 여행 초반부터 정색하고 답하더라는 얘기. 자동차로 40분, 막힘없는 국도를 달리는 전국 일주 드라이빙, ‘사이판’이라 가능하다.

교통체증에 답답함을 느꼈던 우리에겐 사이판여행이 주는 가장 큰 재미다. 진부한 에메랄드 빛 바다라는 말 대신 먹으면 힘이 난다는 ‘P’사의 스포츠 음료와 같은 바다색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무튼 파란빛의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다 보면 새빨간 꽃잎이 만개한 일명 ‘불꽃나무’와 쨍하니 뜬 햇볕으로 아름다운 색채를 자랑하는 사이판 전국 일주가 끝이 난다. 의심 많은 사람이라면 직접 자동차를 몰고 사이판 전국 일주를 해도 좋다.

오전 일찍 일어나 드라이빙하겠다는 계획은 덮자. 우리의 여행은 또 한 번 진부한 단어들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꾹 참고 말한다. ‘여유’, ‘힐링’, ‘느림의 미학’이 콘셉트다. 그러니 이른 저녁인 6시부터 7시 사이로 드라이빙을 미루자. 단순히 늦장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시간대는 해안선 너머 주황빛이 물드는 노을진 사이판 드라이빙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 일단 드라이빙을 통해 사이판의 전체를 눈에 담았다면 다음날부터는 구석구석 사이판의 자연을 만끽해보자.
 

‘사진 못 찍는 기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기자조차 나름 성공했다. 조명도 필요 없고 구도도 필요 없다. 찍으면 화보가 되는 사이판은 365일 중 350일은 쨍하다는 기후가 큰 몫을 한다. 때문에 동남아처럼 여행 중 비에 홀딱 젖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습도 높은 불쾌한 더위에 순간순간 여행을 방해하는 짜증과도 씨름할 필요가 없다. 땀이 나도 불쾌하지 않는 여행지가 사이판이다.

5월에 사이판을 찾는다면 탁월한 선택이라 감히 말하겠다. ‘불꽃나무’ 덕에 사이판의 원색미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으니까. 새파란 하늘 위로 포인트 같은 뭉게구름 몇 점과 붉은 꽃잎, 녹음의 도로 옆으로 반짝이는 파란 바다가 그림 같은 장면을 매순간 연출한다. 자연경관이 그 아무리 빼어나도 유명 여행지에서는 100% 감상에 푹 빠질 수 없다.
 


이것, 저것 물건 팔려는 상점가 주인들의 호객행위에 이리저리 치이고 귀만 먹먹해지는 상술들이 넘쳐나기 때문. 기억에 남는 건 호객행위에 팔랑거리는 내 귀? 그러나 사이판은 그렇지 않다. 더위에 갈증을 느끼는 여행자들에게 코코넛음료를 판매하는 주인들의 표정은 “사든지 말든지” 심드렁하다.

무더운 여름날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에겐 눈길 주지 않고 윙윙 거리는 파리만 내쫓으며 보지도 않은 채 “그건 500원”이라고 말하던 시크(?)한 시골 슈퍼마켓 주인 할머니가 생각난다. 가게마다 과하게 친절해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어 난감해 하던 기자에게 사이판 코코넛 주인아저씨의 모습은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말하건대 사이판 주민들이 불친절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다보면 자연스레 이해타산이 빨라지고 때가 묻기 마련이다. 유명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을 찍으려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찍어주지 않겠다는 으름장에 1달러를 쥐어주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의 사진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가 익숙해진 우리에게 사이판은 말 그대로 ‘시골인심’이 난다. 과한 친절도 강매도 없다. 그저 그들에겐 일상인 이곳에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것. 이 손님을 돈으로 보지 않고 사이판을 마음껏 즐기다 가길 바라는 현지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곳이 사이판이다. 관광객을 돈으로만 보는 타 여행지 주민들과 다르다. 사이판여행의 ‘힐링’이 바로 깨끗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청정한 현지인들의 태도 아닐까 싶다.
 

코코넛으로 입가심 했다면 사이판 중심지점인 PIC사이판을 기점으로 북부투어부터 시작해볼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도 좋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도 좋다.

북부투어의 첫 번째 장소는 ‘버드아일랜드’. 버드아일랜드는 작은 섬 주변에 부딪치는 파도 모양이 마치 새의 날갯짓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물총새, 흰 제비갈매기 등 희귀종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니 정말 새들을 위한 섬이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데 기자가 찾았던 당시에도 버드아일랜드는 한껏 치장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포토 스튜디오가 됐다.
 


버드아일랜드 앞 중국인 관광객들.
 

버드아일랜드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잠수복을 입은 무리를 만나게 된다. 전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 ‘그로토’가 두 번째 코스다. 그로토 입구를 벗어나 왼쪽으로 몇 걸음 이동하면 그로토와 그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울창한 수풀 사이로 뻥 뚫린 구멍(?)이 바로 그로토다. 그로토를 내려가기 전에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마음을 가다듬자. 일상에 지쳐 체력 단련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핑계로 시작하는 거다.

100여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진정한 그로토를 볼 수 있다. 반짝이는 하늘빛 바다와 섬 사이로 난 몇 개의 동굴에서 나오는 빛을 ‘선녀탕’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자의 저급 표현이 못내 아쉬워지고 만다. 이미 ‘선녀탕’이라고 표현했으니 덧붙이자면 옛 동화에 보면 선녀들이 달빛 아래 목욕하던 신비로운 계곡의 느낌이 바로 그로토다.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을 통해 몸으로 그로토를 경험하는 것도 추천한다. 다만 물살이 빨라지는 부분이 있으니 초보자라면 다음 편에 소개될 ‘마나가하 섬’에서의 스노클링을 제안한다.
 


 

‘헉헉’거리는 거친 숨을 몰아내며 100여 개의 계단을 올라 그로토를 벗어나면 다음 행선지 ‘만세절벽’이 우리를 반긴다.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는 필수여행코스인 만세절벽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패전하자 사이판에 있던 일본군들은 항복 대신 “천황 만세”를 외치며 자살을 택했고 만세절벽 아래 바다로 몸을 내던졌다. 이에 일본인들에게는 상흔이 남아있는 역사적 장소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인들에게도 슬픈 장소다. 2차 세계대전에 강제 징집됐던 우리 선조들 역시 원치 않는 죽음을 이곳에서 맞아야 했다. 선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한국인 위령비가 만세절벽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북부투어를 마치는 건 어떨까.
 


만세절벽 앞 고인의 넋을 기리는 일본인 관광객.
 

북부투어를 마치고 나니 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아직 남은 일정이 있다. 사이판 북부를 빠짐없이 둘러봤으니 다시 사이판의 중간지점으로 이동하자. 이곳에는 타포차우산이 자리하고 있다.

타포차우산 정상에서 360도 파노라마 사이판을 눈과 카메라로 담아보자. 타포차우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 또한 일품이다. 사이판 오프로드를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것. 비탈길과 꼬불꼬불 정리되지 않은 길을 달리며 잠재된 모험심을 드러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타포차우산 정상에 오르면 우리가 사이판에 첫 발을 내딛었던 사이판공항부터 앞서 방문했던 북부지역, 그 밑까지 모두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기만 해도 사이판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만약 오프로드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타포차우산 만큼은 일본 차량이 아닌 오프로드 전용 차량을 통해 직접 산길을 운행하길 추천한다. 가파른 산길 곳곳에 도처한 움푹 패인 흙길이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타포차우산 정산에서 사이판 전경을 촬영 중인 부자(父子).